국내기업 구조조정 부동산 매각 부진.인원정리등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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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보부도 사건이 일어나기전 부동산 매각등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더라면 그룹이 통째로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로그룹 기획조정실의 한 고위임원이 털어놓은 만시지탄이다.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기업마다 살아남기 위해'사업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지만 이처럼 뜻대로 되지않는 경우가 허다하다.신규사업 진입장벽,경직된 고용시장,기업관련제도및 조직상의 제약,증시및 부동산침체등 안팎의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남들이 모두 한다니까 구조조정의 흉내만 내거나 발표만 해놓고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컨대 진로는 95년 계열사 흡수합병을 통해 1차 구조조정 작업을 마쳤다고 했지만 군소계열사 합병수준에 그쳤다.

그 뒤 사업구조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히려 능력을 넘어선 국내외 신규사업 확대에 나섰다가 그룹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서고 말았다.최근 금융권의 도움으로 부도를 면하고 있는 대농도 사정은 마찬가지.주력인 ㈜대농의 면방사업 침체로 지난해 3천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자 지난 3월 부랴부랴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이 두 그룹이 벼랑끝에 몰린 것은 막바지까지 모든 사업을 끌어안다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 때문이다.

이처럼 구조조정은 결심하기도 어렵고 설사 착수해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구본무(具本茂)LG그룹회장이 최근 임원회의에서“경영의 체질개선은커녕 아직도 일부 기업문화단위(CU)간 사업수주를 놓고 출혈경쟁을 벌여 브랜드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고 질타한 것은 이런 사실을 잘 말해준다.

◇늦어지는 계열사 정리=현대그룹은 95년초 금강개발산업등 10개사를 그룹에서 분리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지금까지 단 한개사의 분리작업도 마무리되지 않았다.증권시장의 침체가 큰 걸림돌이 됐다는게 그룹측의 설명이다.삼성의 경우 건설과 물산은 예정대로 합병했으나 가전품을 만드는 광주전자는 삼성전자에 합병을 추진하다가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대우그룹도 95년2월 경영구조 재편을 위해 한국산업전자.경남금속등 4개 계열사를 97년까지 매각키로 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한화그룹 비서실 이재무(李在茂)전략기획팀장은“기업을 팔면 상당액을 세금으로 떼여 M&A의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다.

◇부진한 부동산 매각=쌍용자동차는 최근 서울도곡동 사옥을 내놓았지만 마땅한 인수자가 나오질 않자 아예 형편이 나은 계열사에 매각하는 고육책을 썼다.

진로 역시 서울 남부터미널 부지등 요지의 부동산 10여건은 쉽사리 매각 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두달이 다 되도록 한건도 팔지 못했다.최근엔 주류하치장으로 쓰던 서울문래동 1천5백평을 83억원에 넘긴 것이 고작이다.그러나 일부 그룹은 자구책으로 부동산을 판다면서 알토란같은 땅은 그대로 둔채 맛보기식으로 부동산을 끼워넣는 경우도 있다.

◇인원정리의 어려움=LG그룹은 최근“3년안에 90개 사업을 포기하거나 중소기업에 이양한다”고 발표했지만 전배인원의 정리문제와 협력회사의 반발로 시작부터 시련을 겪고 있다.

㈜코오롱은 타이어 완충재인 타이어코드지 제조와 관련된 생산설비를 지난해말 중소기업에 이양하는등 한계생산 설비를 털어내려 하고 있으나 직원들의 동요로 주춤하고 있다.

정진하(丁鎭夏)LG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직종변경등을 강행하기 어려운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구조조정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윤희.이수호 기자

<사진설명>

진로그룹이 팔겠다고 내놓은 서울서초동 남부버스터미널 전경.부지규모가 8천5백평에 이르고 목도 좋은 편이어서 금싸리기땅으로 꼽히고 있지만 팔려고 내놓은지 한달이 넘도록 팔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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