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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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로즈 버드단원들은 우풍을 제외한 니키 마우마우단원들이 자기들에게는 아무런 귀띔도 해주지 않고 그들만 살짝 도망을 간데 대하여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차에,형사들이 노련한 솜씨로 신문을 벌이자 니키 마우마우단에 관하여 알고 있는 사항들을 하나 둘씩 불기 시작했다.

기달과 옥,용태와 숙,도철과 희,우풍과 자,길세와 혜들이 짝을 이루어 친해진 것이 니키 마우마우단에 관한 비밀스런 사항들이 새어나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었다.

경찰 당국은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가정과 학교,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피의자 이우풍의 특수강도 강간미수혐의를 기정사실화하여 언론에 보도자료를 내어주었다.신문들은 우풍을 거의 범인으로 몰아 범행의 대담성과 잔인성,성폭력성들을 그럴듯하게 극화시켜 범죄현장의 약도와 범인의 동선(動線)까지 그려가며 대서특필하였다.

어떤 일간지는 우풍이 속한 니키 마우마우단에 관한 기사를 특집으로 다루면서,경찰이 증거물로 압수한 민준우의 편지를 기초로 사회 각계의 필진을 동원하여 브이(V)세대론을 다각도로 펼쳐보이기도 하였다.

“민준우라는 가출학생의 편지 구절을 신문을 통해 읽어보고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그 학생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제 그런 운동(새마을 운동)마저 찾아볼 길 없는 우리나라는 정권을 잡은 지도자들이 자기 배와 친인척의 배들을 채우고 있는 동안,나라 전반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무엇보다 대학입시 경쟁과열로 학교 교육은 그야말로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볼 때 준우 학생 또래들은 우리나라와 학교 상황을 진흙탕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들에게는 나라에 대한 자긍심 같은 것은 찾아볼 길이 없다.이들은 이런 지저분한 나라에 태어나서 엉터리 교육환경에서 억울하게 고생만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이들에게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니 선진국 진입이니 교육을 통한 인격 향상이니 하는 말들은 헛소리나 잠꼬대 정도로 들린다.

준우 학생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진흙탕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빠져들고 자빠지고 하듯이,교육개혁이다 뭐다 할 적마다 더욱 수습하기 힘든 상황으로 접어들었다.학생들을 단답식,사지선다형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도록 하고 창의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수능고사니 논술이니 하는 방편들을 끌어들였지만,오히려 과외열기만 더 부추기고 정형화된 논술 기술만 익히도록 하였다.' 이들은 입시개혁이니 교육개혁이니 하는 것들에 대하여 증오에 가까운 깊은 불신감을 가지고 있다.그 어떤 달콤한 설득도 이들에게는 한낱 가증스런 위선으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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