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따라 움직이는 집, 아이디어가 프라이부르크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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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12면

‘헬리오트롭(Heliotrop)’. 프라이부르크 보봉 인근에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다. 원통형으로 생긴 3층짜리 건물을 가느다란 기둥이 떠받치고 있어 기이한 느낌을 준다. 옥상에 있는 60㎡ 넓이의 태양전지판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태양광 주택이다. 건물에서 소비되는 전기의 5~6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 집이 움직일 수 있도록 기둥 중심축에 240개의 베어링을 설치했다.

이 집의 주인은 독일 최고의 태양광 건축설계 전문가 롤프 디슈(64). 1994년 에너지를 생산하는 집을 주창하며 20억원을 투자해 이 건물을 지었다. 프라이부르크에 오는 여행객이라면 꼭 들르는 관광 코스의 하나가 됐다.

보봉 마을에 있는 태양광 에너지 주택 50여 가구도 디슈의 작품이다. 지붕 위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한다.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아 전기회사에서 되레 돈을 받는다. 디슈는 “건축비가 일반주택보다 15%가량 비싸지만 에너지 소비를 8% 절감할 수 있어 수익성이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태양광 주택 단지 앞에는 ‘태양 배(Solar ship)’로 불리는 큰 건물이 있다. 1층에 수퍼마켓 등 상점들이, 2~3층에 디슈의 건축설계회사를 포함한 사무실들이 입주해 있다. 옥상에는 태양열 주택 4채가 자리 잡고 있다.

보봉 주민들의 모임인 ‘주민연대(Stadtteilverein)’의 알무트 슈스터는 “디슈는 태양광을 활용한 건축을 선보인 혁신적 발명가”라며 “그의 노력으로 보봉의 스카이라인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라이부르크는 디슈 같은 괴짜 발명가가 나올 수 있는 정신적 풍토를 갖춘 곳이다.

프라이부르크(Freiburg)라는 이름 자체가 ‘자유의 도시’라는 뜻이다. 1120년 건설돼 자유 교역을 하는 시로서의 특권을 인정받았다. 특히 1457년 설립된 프라이부르크대학은 독일 학문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 대학이 배출한 학자로는 철학에서 현상학을 창시한 에드문트 후설과 그의 제자이자 스승의 업적을 계승·발전시킨 마르틴 하이데거, 고분자화학을 창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헤르만 슈타우딩거 등이 있다. 경제학 부문에서는 ‘프라이부르크 학파’를 세운 발터 오이켄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대표적이다. 프라이부르크 학파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위협해 독점으로 이어지는 카르텔 등이 발생하는 것은 자유방임주의 때문”이라며 질서자유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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