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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없는 일인체제, 애플 2차 위기 맞을 수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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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14면

“애플 CPU에 중대 결함이 발생했다.”

스티브 잡스 건강 이상 파문

미 정보기술(IT) 업체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54)의 건강 문제를 두고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의 부재로 애플의 경영·혁신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 위기설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주 잡스는 ‘호르몬 이상’을 이유로 병가를 내고 일선 경영에서 물러났다. 그는 “내 건강 문제가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함을 알게 됐다”며 “6월 말까지 병가를 떠난다”고 14일 e-메일로 애플 임직원들에게 알렸다. 그 기간 동안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이 일상적인 업무를 대신하고 나는 좀 더 전략적인 결정만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월스트리트와 글로벌 IT업계에 파란을 불렀다. 옛 소련 실력자나 북한 실권자의 건강 이상설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의 국제 정치계를 보는 듯했다. 볼 살이 홀쭉하게 빠진 사진이 공개됐다. 주가가 미끄러졌다. 급기야 17일엔 블룸버그 통신이 ‘간 이식 수술 가능성’을 보도했다.

그러나 애플 쪽은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로 정확한 병명과 상태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주주들의 집단 소송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상장 기업은 주주들이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문제를 자세히 공개해야 한다’는 1976년 미 대법원 판례가 근거다. 건강 문제가 불거진 이후 애플 주가가 10% 정도 빠졌는데 회사 쪽이 사실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설(說), 설, 설 끝에 드러난 사실
잡스의 건강 이상은 이달 초 공개됐지만 징후는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16일 애플은 2009년 6월에 열릴 예정인 맥 월드 콘퍼런스에서 잡스가 연설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의 건강 이상설이 본격적으로 떠오른 게 이때다. 이 콘퍼런스에서 신제품이나 신기술, 또는 개발전략을 깜짝쇼 하듯이 내놓길 좋아하는 잡스가 연설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미 잡스의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는 간헐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2006년 8월 공식석상에 선 잡스의 모습이 발단이었다. 당시 그는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 보였다. 얼굴은 초췌했고 활력도 떨어져 보였다. 이후 끊임없이 그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애플 쪽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심지어 건강 이상설을 보도하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강하게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엔 그의 건강 문제가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잡스가 기자회견을 열자 언론은 신제품보다는 그의 건강 문제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는 “여러분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재치 있는 말솜씨로 그 순간을 넘어갔다. 그런데 한 달 뒤인 지난해 8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블룸버그 통신이 ‘실수로’ 그의 부음기사를 전송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병명과 사망 날짜, 시간은 빈 칸이었다. 블룸버그는 서둘러 수습해 별 일 없이 넘어갔다.

잡스의 건강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2004년 7월 췌장암 수술을 받았다. 췌장암에 걸리면 인슐린 등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된다. 과다 호르몬 분비는 저혈당저혈압 등을 일으킨다. 간으로 전이되기도 쉽다. 최악의 경우엔 간 이식 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 잡스가 밝힌 ‘호르몬 이상’을 놓고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등 구구한 추측이 난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잡스 건강이 심상찮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그의 퇴진설도 나오고 있다. 췌장암이 암 가운데 완치율이 낮기로 유명한 탓이다. 다행히 간 이식 등으로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심리적 중압감이 만만찮은 CEO 역할을 이전처럼 활력 있게 수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퇴진설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잡스는 이미 85년 애플과 결별한 바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벌컥 화를 내곤 했던 그는 회사가 나갈 방향을 놓고 CEO인 존 스컬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스컬리는 잡스가 회사 경영을 맡기기 위해 펩시콜라에서 영입한 인물이었다.

그의 발끈한 성격에 질린 회사 사람들이 거의 전부 그에게 등을 돌리는 바람에 애플을 떠나야 했다. 넥스트(NeXT)라는 컴퓨터 회사를 설립해 독립하는 방식이었다. 애플을 설립한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스티브 보즈니악과 76년 애플컴퓨터를 세워 80년대 초 PC시대를 열었다.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수천만 달러를 거머쥐기도 했다.

잡스가 떠난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시리즈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애플의 1차 위기’라고 부른다. 97년 애플은 잡스를 다시 불러들였다. 연봉은 단돈 1달러였다.

이후 그는 소비자의 심리적 만족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디자인과 유저인터페이스(UI) 개발에 집중했다. 새로운 매킨토시 시리즈뿐 아니라 아이팟아이폰을 내놓아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다. 애플은 일부 매니어뿐 아니라 대중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97년 잡스 복귀 후 대대적 숙청
애플이 부활하는 과정에서 ‘잡스의 일인체제’가 구축됐다. 12년 만에 친정에 복귀한 잡스는 입맛에 맞지 않은 인물을 쫓아냈다.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의 지은이인 린더 커니는 영국 BBC 다큐멘터리팀과 인터뷰에서 그의 숙청작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증언했다.

“잡스는 애플에 돌아온 이후 한동안 집무실 밖을 나가지 않았다. 임직원들이 전전긍긍했다. 쫓겨난 CEO가 되돌아왔는데 아무런 말도 없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이런 침묵을 깨고 복도로 걸어나온 잡스는 마주친 사람들에게 불쑥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었다. 대답이 시원찮은 사람은 다음 날 여지없이 쫓겨났다. 그는 이렇게 애플을 장악했다. 더 나아가 애플 자체를 자신의 성향대로 재구성했다.”

그 결과 “잡스 공백 이후 애플 운명이 불안하게 됐다”고 커니는 지난주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COO인 쿡이 그의 공백 동안 소소한 일을 맡아 처리하겠지만 순식간에 변하는 소비자 입맛을 귀신같이 알아채 제품을 개발하는 잡스를 대신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가 있기는 하지만 잡스처럼 깜짝쇼 등을 지능적으로 벌이며 글로벌 마케팅을 하지 못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IT마케팅 전문가인 레지스 매키너는 16일 중앙SUNDAY와 전화 인터뷰에서 “잡스에 대한 애플의 의존도는 빌 게이츠에 대한 MS 의존도보다 크다”며 “‘포스트 잡스’를 대비하지 못한 애플의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제대로 수습되지 않으면 애플은 90년대 초에 이어 두 번째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시스템보다 한 사람에 너무 의존한 대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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