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을 키워주고 저작권 보호하는 분위기 조성됐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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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04면

그림책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39·사진)씨는 한국 어린이책 시장을 놀라게 한 주인공이다. 신인 시절인 2004년 10월 출간한 『구름빵』은 30만 부가 넘게 팔리며 2000년대 출간된 국내 그림책 중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ㆍ일본ㆍ대만으로 저작권이 수출됐고, 이 작품으로 그는 2005년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구름빵』으로 한국 대표 작가 반열 오른 백희나씨

“당시 몸이 너무 아파 몽롱한 상태에서 행사장을 거닐었다”고 추억한 그는 “어린이책도 이렇게 다양하고 실험적으로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모와 아이가 모두 행복해지는 그림책을 만들겠다”는 그의 의도는 『구름빵』부터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비가 오는 날 낮게 깔린 구름을 걷어와 빵을 만들었다. 빵을 먹은 아이들은 구름처럼 둥둥 하늘로 날아오른다. 지각할까봐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던 아빠도 구름빵을 먹고 둥둥 떠오른다. 입체와 평면이 조화를 이룬 그림도 그만의 창작물이다. 비 오는 날 실내의 노란색 분위기를 내기 위해 꼬마전구까지 동원했다.

“글을 먼저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캐릭터를 먼저 그린 뒤 글을 쓰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서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죠.”
전래동화 ‘팥죽 할멈과 호랑이’(2006), 외국동화 ‘북풍을 찾아간 소년’(2007)에 이어 지금은 이웃 간의 소통과 소동을 다룬 신작을 준비 중이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졸업한 뒤 처음엔 교육용 시디롬을 개발하는 회사에 다녔다. 시청각 효과가 중요한 일이었다. 전문가가 해야 하는 분야였는데, 직접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디즈니가 세운 미국의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구름빵』은 그가 유학 가기 전 잠깐 출판 관련 아르바이트를 했던 일이 인연이 돼 나왔다. 『구름빵』으로 일약 유명 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출판사와 인세 계약이 아닌 ‘저작물 개발 양도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외 출판권은 물론 캐릭터 사용료까지 모두 출판사에 넘기는 계약이었다”며 “계약 당시 받은 850만원과 이후 인센티브로 받은 1000만원이 『구름빵』으로 번 돈의 전부”라고 말했다.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그는 “후배 신인 작가들에게 첫 번째 계약이라도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신인 작가들은 데뷔나 한다는 생각으로 대충 계약하기 쉽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우리나라 그림책의 발전을 위해서는 신인을 키워주는 분위기, 작가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절실하다”는 제언도 그의 아쉬움과 일맥상통한다. “작가가 경제적 고민 없이 마음 놓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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