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EU와 거리두는 영국 미국과는 더 가까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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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네덜란드 노르트베이크에서 23일 열린 유럽연합(EU)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럽 정상들은 씁쓰레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EU는 그동안 영국 보수당정부와 워낙 잦은 갈등을 빚어 지난번 영국 총선에서'대립 아닌 협력'을 표방한 노동당이 승리하기를 기대했다.기대 대로 노동당은 승리했고 EU 지도자들은 새로 출범한 영국 노동당정부와 첫 상견례(相見禮)가 될 이번 회의에서 당연히 영국의 달라진 모습을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약속했던 사회관련 조항 준수에서 한발 빼면서 EU도 달라지라고 요구,기대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유럽 정상들 입장에선 즐거워야 할 회의가 쓴 맛으로 변한 것이다.

블레어 총리가 이같이 완강한 태도를 보인 데 대한 의문을 푸는'사건'이 공개됐다.블레어 총리는 노르트베이크로 떠나기 바로 전날 총리관저로 마거릿 대처 전총리를 초청,'특별지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철저한 반(反)EU 입장인 대처 여사가 블레어 총리에게 어떤 주문을 했을지는 물어볼 것도 없다.

대처 여사는 이 자리에서 영.미 우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대처 여사는 총리 시절 로널드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양국 관계는'론과 매기의 밀월(蜜月)시대'라고 할 만큼 가까웠다.

이와 관련,영.미 관계를 상징하는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러시아협정 체결과 마셜 플랜 50년 기념행사 참석차 유럽 방문길에 28일 영국에 들러 총리관저에서 내각회의에 참석한다.내각회의에 외국 원수가 참석하기는 영국 역사상 처음이다.

또 클린턴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는 정상회담에서'빌과 토니'로서 격의없는 대화를 할 계획이다.두 사람의 이 약속은 지난 95년 블레어 당시 노동당 당수가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클린턴 대통령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EU와는 제한적 협력관계를 표방한 블레어 총리가 유럽통합으로 미국의 영향력 상실을 우려하는 클린턴 대통령과 친구 사이를 다짐하는 것을 보고 유럽 사람들은'영국은 과연 유럽의 일원인가'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런던=정우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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