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재·보선 여당 참패] 열린우리 왜 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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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에서 압승했던 열린우리당이 불과 51일 뒤의 6.5 재.보선에서 참패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권이 분석하는 패인은 복합적이다. 여당의 자만과 분열, 친여 외곽세력의 방관, 선거전략의 미숙 등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란 것이다.

총선 승리 후 열린우리당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태를 여러 번 노출했다. 당 지도부였던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원내대표 사이에서 벌어진 입각 신경전이 그 대표적 예다. 양측은 개각 때 어떤 자리(통일부.보건복지부 장관)를 차지하는 게 향후 차기 대권 경쟁에서 유리한지를 놓고 견제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여당이 총선 승리에 도취해 민생과 개혁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잡탕'같은 당내 역학구도도 문제였다. 108명의 초선 의원들 사이에선 설익은 목소리들이 나왔다. 김혁규 의원의 총리 기용 문제에 대해서도 중구난방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갈등도 노출됐다. 아파트 원가 공개 여부를 놓고서는 여당과 정부가 혼선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 지지세가 강한 네티즌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며 "이는 젊은층 투표 참여를 떨어뜨린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애착을 보였던 동진(東進)정책도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盧대통령의 영남 출신 측근들의 주도로 '영남발전특위'(본지 5월 27일자 3면 단독보도)를 구성해 영남을 공략한다는 구상은 호남에서 극심한 반발을 샀다. 반면 그걸로 영남을 파고들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재.보선이 지난 대선이나 총선과는 다른 분위기에서 치러진 점도 여당에선 패인으로 꼽는다. 노사모와 친여 시민단체가 이번엔 방관했으므로 표의 결집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총선 후 정국관리를 잘못한 여당 탓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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