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사 가요 방송금지 논란 - MBC 10곡 심의 보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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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가수는 분명히 한국인인데 노래제목과 가사는 몽땅 영어인 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기성세대의 관념으로는 한두마디 영어삽입은 모르지만 곡 전체를 영어로 부른다면 눈쌀을 찌푸릴 가능성이 높다.반면 영어에 거부감이 없는데다 팝송을 즐겨 들어온 젊은 세대들은 가사에 관계없이 노래 자체를 즐기는 편에 속할 것이다.음반가요 사전심의가 철폐된 지금은 가사를 어느 나라말로 부르건 음반제작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외국어가요'가 지상파방송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느냐에 관해선 사정이 다르다.세대간의 시각 차는 물론 음반산업의 세계화등 경제적 차원까지 걸쳐 적지않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 MBC는 제목.가사가 전부 영어로 된 가요 10곡의 심의를 무더기 보류해 사실상 방송금지했다.인기그룹 솔리드의 신곡'이프 유 원트 마이 러빙'과'패스 미 더 마이크'를 비롯,댄스그룹 어스(유에스)의'마이 베리 오운''옐라크러시''엑스터시''인 다 비기닝'과 역시 댄스그룹인 모비딕의'오 갓',발라드그룹 벤의'올 유 원투 두',가수 김경호의'아우어 선'과 이승훈의'제시'등이다.

MBC측은“영어가요를 무조건 금지하는 원칙은 없다”며“그러나 가요의 영어사용이 최근 상식선에서 수용이 어려울 정도로 남발돼 국내정서에 부합되기 어렵다고 판단,이같이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MBC의 이번 결정은 아직 영어가요 심의를 하지 않은 KBS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가사내용의 3분의1이상이 영어일 경우 방송을 금지했던 SBS는 최근 영어로 된 곡이 급증한 현실과 가요의 세계화 추세를 인정,저속한 가사가 아닌한 영어가요방송을 허용키로 방침을 바꿨다. 이같은 방송사간 입장차이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부른 가요에 대한 국내의 혼란된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MBC의 결정이 고유문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보수적 시각을 대변한 반면 SBS처럼 가요의 세계화와 음반수출을 위해 외국어가요를 방송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유럽.일본은 자국가요 상당수를 영어로 만든 뒤 유로팝.재팬팝등 용어를 붙여 해외수출의 무기로 삼고 있다는 것이 주된 논거다.

또 고음에다 비트가 빠른 메탈같은 장르는 받침 때문에 발성이 힘든 한국어대신 영어를 선호하게 된다는 주장도 있다.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중인 메탈그룹은 상당수가 아예 방송을 포기하고 영어로 노래부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영어가요가 범람할 경우 우리 언어와 정신문화를 크게 오염시킬 것이란 보수적 시각도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MBC는“방송금지한 가요중 한 곡에서'F'로 시작되는 미국식 4자속어가 들렸으며 갱스터랩을 본딴듯한 그룹 어스의 노래들은 제목을'Yellakrush''엑스터시(X-tasy)'등 일부러 철자를 틀리게 하거나 생략,언어사용에 혼란을 줄 소지가 있었다”고 밝혔다. 강찬호 기자

<사진설명>

최근 발표한 새앨범중 가사 전부가 영어로 된 노래 2곡을 MBC로부터 방송금지당한 재미교포 출신 리듬 앤드 블루스 그룹 솔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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