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인디록의 聖所 카페 '드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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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 국 언더그라운드 인디(독립)펑크록의 성지라는 홍익대앞 드럭카페.오후7시.5천원을 내니 성냥 한통을 준다.음료권이란다.'반(反)형식'의 간편함이 보인다.컴컴한 지하실에는 이미 스무명 정도가 들어와 있다.튀는 차림새와 담박한 복장이 절반씩이다.어둠을 증폭하는 선글라스,염색한 머리,까치머리,빡빡들이 보인다.

뜻밖이다.펑크록을 연주할 무대 뒤에 작은 태극기가 걸려있다는 사실.사괘의 위치도 제대로 돼있다.그 옆에 청테이프로 커다랗게'Anarchy'라는 영자.무정부주의 선언이 국기와 나란히 있는 것이다.

천장은 검게,사방 벽과 기둥은 붉은 색과 검은 색이 교대로-세기말적인 처절한 분위기다.벽에는 잡지에서 뜯은듯한 외국 펑크밴드들 사진이 음반판매 안내문.철 지난 공연포스터등과 함께 너덜너덜 붙어있다.

나무바닥은 부서져 주저앉은 곳도 눈에 띈다.30평 남짓한 공간에 높고 낮은 의자들이 불규칙하게 자리잡고 있다.2백촉 노란전구가 유일한 무대조명. 질서라는 말은 앰프에 가지런히 꽂힌 전극단자에만 해당될 뿐 모든 것이 혼돈.하지만 혼돈은 창조의 모태가 아닌가.그 혼돈 속에서 연주가 시작된다.

이럴 수가! 믿기지 않는 신나는 세상이 무대에서 튀어나온다.연주하는 사람이 청중보다 더욱 흥겨워하는 콘서트.세상을 쥐어뜯고 싶은듯 절규하며 뽑아내는 목소리에 드럭 키드들은 열광한다.좁은 공간을 꽉 채우는 고밀도의 사운드는 성적 희열을 일으킬 정도로 심장박동 수를 늘려놓는다.

한 기타리스트가 고교생 교복차림으로 연주한다.그는 학생이 아니다.그 복장에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섞었을 때 스며나는 묘한 향기를 즐겨서다.그건 드럭이라는 인디 펑크록 공간의 냄새이기도 하다.

이들의 노래는 화석이 될까,아니면 세상을 지배하게 될까.드럭은 성지가 될까,기억에서 사라질까. 이건 장난이 아니다.흉내도 아니다.그들은 신(神)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구석에서 영화'이레이저 헤드'의 그로테스크한 포스터가 노려보고 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투항의 대가로 상업주의가 지불하는 표준화된 의식(儀式),즉 대형 콘서트.방송출연.스타되기에 대항할 감성을 잃지 않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인디 록.그것이 머무르는 공간은 바로 록의 본질적 위상이다.

자본주의 냄새가 나는 호텔 컨벤션센터나 대통령을 대리선출하던 체육관은 록이 머무를 곳이 아니다.'고급'들이 어렵고 복잡한 듣기.보기.읽기를 해대는 무슨 회관이나 전당은 공허한 장소일 뿐이다.“나도 하고 너도 한다.당신도 할 수 있다”를 모토로 삼는 펑크록이라면 엘리트 체육이 지나간 자리,올림픽 경기장과는 긴장관계밖에는 가질게 없다.

취향은 계급을 표시한다고 했던가.그래선지 인디 록은 도시의 우중충한 지하나 폐허,버려진 건축물 같은데를 선호한다.

자리를 옮기자.서울대 뒤편 계곡 1백짜리 수영장.물빠진 풀에서 지난 17일 낮12시부터 자정까지 록페스티벌이 열렸다.

수영장 벽에는 온통 페인트 낙서.미워하는 언론매체의 이름이 가위표와 함께 그려져 있다.국어와 외국어로 된 욕설.구호.그룹이름들.대변 그림도 보인다.노천이라도 열기는 지하카페와 다름없다.여긴 록 공연장 아닌가.탄성과 환호.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람들,선채로 깡충깡충 뛰고 팔을 흔드는 이.그들은 젊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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