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고교 평준화 선발제 병행이냐 현행제도 고수냐 - 평준화 해제 이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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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한국당이 검토중인 서울등 중.대도시 고등학교 평준화 일부 해제방안은 유보되어야 한다.현행 고교 평준화가 수준차가 많은 학생들을 한 학급에 둠으로써 가르치고 배우는데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렇지만 고교 평준화 해제는 교육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지금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만일 평준화 지역에서 몇몇 학교만 자율선발권을 갖는다면 학생들은 그리로 몰릴 것이 뻔하다.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다.그리고 그런 학교들은 대학입시 준비기관으로서의 명문고교 위상을 뽐내게 될 것이다.지금 대다수 고등학교는 국민 보통교육 기관으로서 건전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전인교육의 장이 아니라 대학입시 준비장이 돼버렸다.특수목적을 가지고 세운 과학고나 외국어고도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통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고교 평준화 해제 검토가 혹시 사교육비 절감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도 현실인식이 잘못된 것이다.지금의 사교육비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무조건 나가는 것이다.때문에 소위 시험을 쳐 일류고등학교에 들어간 학생도 더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사교육비를 지출할 것이며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성적향상을 위해 사교육비를 지출할 것이 뻔하다.고교입시가 부활하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사교육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대학입시를 겨냥한 치열한 점수경쟁이 존재하는 한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지금까지 성적우수자를 중심으로 운용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이제는 학습부진아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서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고입선발시험을 쳐 학생들의 수준을 갈라놓아야 성적우수자한테도 좋고 학습부진아한테도 좋다고 말한다.물론 수준이 비슷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다.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학교별로 나누는 방식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교육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한 빨리 입시위주 교육을 탈피해야 한다면 고교평준화 해제가 아닌 다른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이미 많은 학교가 열린 교육으로 교실개혁을 시도하고 있다.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또 수준별 교육이 가능한 열린 교육이 큰 호응을 얻어 확산되고 있는 마당이다.

고교평준화 해제를 검토하기 전에 과밀학급을 해소해야 한다.그것이 돈이 많이 들어 세월이 많이 걸린다면 고교평준화 해제도 그때까지 유보되어야 마땅하다.돈안드는 처방이라고 제도개혁을 안이하게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돈도 더 들고 교육적 폐해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물론 학생에게 학교선택권을 보장해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그러나 고입 선발시험을 치르면 학교선택권이 1백% 보장되는 것이고 평준화 상태에선 학교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수정되어야 한다.평준화제도 아래서도 몇개 학교를 원하는 순서대로 지망해 추첨배정하면 학생에게 학교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이다.

앞으로 입시위주 교육풍토가 사라지고,대학의 학생선발 방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사립고의 학생선발자율권을 확대하고 교육수요자도 사학의 건학이념이나 전통을 보고 학교를 골라 갈 수 있게 될 것이다.평준화 해제 논의는 그때까지 미루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田豊子 학부모연대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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