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속 TV 세계 미디어 '새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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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5월 1일 위성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DMB 본방송으로는 지난해 10월의 일본에 이어 두 번째지만, 휴대전화를 통한 실질적 서비스는 세계 최초다. 신문.라디오.TV 등 전통 매체 등장에선 늦었던 우리가 세계 미디어사(史)를 새로 쓴다. 알려진 대로 DMB는 이동 중에도 고품질의 방송을 즐길 수 있는 뉴미디어. 사업자인 TU미디어는 'Take out TV'란 슬로건을 내걸고 기존 방송이 차지하지 못했던 시.공간을 파고들겠다는 복안을 밝히고 있다. 콘텐트의 경우 모바일에 적합한 짧고 감각적인 프로그램과 10~30대가 좋아하는 연예.스포츠.음악.영화 등을 전면에 포진시켰다. DMB는 반도체와 초고속 통신망에 이은 새로운 신화가 될 수 있을 것인가.

◆ 콘텐트 차별화로 승부=위성 DMB는 월 1만3000원을 내는 유료 서비스다. 당연히 돈 내고 볼 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사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 TU 측은 향후 5년간 콘텐트 개발에만 2500여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40여 개 채널이 예상되지만 5월엔 일단 비디오 7개, 오디오 20개 채널이 선보인다. 이 중 모바일 전용 비디오 채널인 '채널 블루'와 오디오 20개 채널은 위성 DMB만의 독특한 메뉴다. 나머지 비디오 채널은 영화.뉴스.드라마 등 인기 장르를 기존 방송사업자가 제공한다.

TU가 운영하는 '채널 블루'는 20여 개 독립제작사가 모바일 전용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세계 유일의 공간이다. 짧게 자주 보는 DMB 특성에 맞게 1~30분 짜리 프로그램이 대다수다. 한 주제로 진행되는 1분짜리 코너 '1 Minute', 10분 안팎의 종이 만화를 보여주는 '무빙 카툰' 등 다양한 포맷이다.

여기에 TU가 자랑으로 내거는 게 타 매체와 차별화되는 오디오 채널들이다. 우선 중앙 EMT의 '펀치45'(Funch=Fun+Channel, 45는 채널번호)는 연예.스타.스포츠 소식을 24시간 신속하고 정확하게 소개하는 채널이다. 거의 손에서 떼놓지 않는 휴대전화를 통해 연예가 정보, 오락 프로그램, 스포츠 소식 및 분석 등을 빠르게 접할 수 있다. 젊은층이 가장 선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TU의 전략 상품 중 하나로 꼽힌다. 10~20대를 잡기 위해 이현우.윤종신.MC몽.김장훈.박슬기.이진성 등 스타들도 총출동한다.

또 위성 DMB엔 장르별 음악을 24시간 틀어주는 채널도 12개나 있다. 신곡 중심의 '뮤직시사회', 최근 1년간 신곡 중심의 '최신가요', 30대 이상이 즐겨 듣는 노래 중심의 '올드가요', '올드팝' 등이다. 이들 채널은 DJ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밖에 회화와 듣기 중심의 '영어.중국어 회화' 채널과 귀로 듣는 책 '오디오북' 채널 등도 눈에 띈다. TU측은 "1970~80년대 라디오 전성시대에 못지않은 위성 라디오 전성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 '라이프스타일'도 바뀌나=현재 위성 DMB 단말기는 2만5000대 정도 보급된 상태. DMB가 '바람'을 타고 급속히 확산될 경우 미디어 이용 문화도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한곳에 앉아 본다는 방송의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위성 DMB는 고속으로 이동하면서도 방송을 보는 데 무리가 없다. 차 안이든 지하철 안이든 장소도 관계없다. 이제 '드라마=귀가 시계'란 말은 사라질지 모른다. 점심시간에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방송을 보는 직장인들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또 '쌍방향 방송'의 개념도 활성화된다. 위성 DMB는 단말기가 브라운관이자 리모컨이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매체다. 방송을 보면서 투표로 우승자를 결정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당장 5월부터 전파를 탄다.

◆ 넘어야 할 과제들=하지만 거쳐야 할 난관도 많다. 우선 차량용을 제외하면 당분간 SK텔레콤 가입자만 위성 DMB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게 약점이다. 다른 이동통신 사업자와의 협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방송위원회가 지상파 재송신을 허용했지만 지상파 방송사들과의 계약이 진척되지 않는 점도 부담이다. 여기에 중계기(갭필러) 추가 설치를 위한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고, 올해 무료 서비스로 등장하는 지상파 DMB와 차별화를 꾀해야 하는 것도 고민거리다.

이상복 기자

*** "3년 내 270만 명 가입" "너무 장밋빛 기대" 전망 엇갈려

위성 DMB는 미디어의 새 장을 여는 의미 못지않게 산업적으로도 순항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현재 휴대전화의 80% 이상이 카메라폰이듯 조만간 전 국민의 80% 이상이 DMB에 가입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TU미디어도 사업 1차 연도에 가입자 60만 명, 3차 연도인 2007년에는 270만 명을 돌파해 단기 손익분기점을 통과한 뒤 6차 연도에는 누적 손익분기점을 돌파하겠다는 계획을 짜놓고 있다.

물론 이에 앞서 가슴 설레게 하는 여러 예측치가 나온 바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DMB 산업이 2010년까지 6년간 14조7000억원의 생산을 유발하고 16만36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견했다.

그러나 이런 통계치가 현실에서 그대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케이블.지역민방.위성방송이 도입될 때 모두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칭송했지만, 한동안 황금알은커녕 알 자체를 낳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도 뉴미디어는 항상 장밋빛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2일 한국언론재단 주최로 강릉에서 열린 '주요 언론계 현안과 미디어 산업'이라는 워크숍에서 많은 미디어 담당 기자와 언론학자가 여기에 의견을 같이했다. 한림대 최영재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한국 미디어 산업은 혼돈 속에 있다"며 "무조건적 낙관론보다는 뉴스 콘텐트 소비에 대한 정확한 전망과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TRI 송영화 선임연구원은 24일 위성 DMB 시장이 2019년께 가입자 648만 명 선에 그칠 거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렇게 전망은 엇갈리지만 긍.부정론을 관통하는 게 있다. TU미디어가 어떤 차별화된 콘텐트를 내놓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 기존 콘텐트를 재탕.삼탕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세계 최초'란 이점을 살려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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