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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영화 『해각7호(海角七號)』와 동아시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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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타이완에서 최고의 흥행성적을 거둔『해각7호(海角七號)』는 연말의 금마장(金馬獎)에서도 5개 부문을 수상하여 그에 대한 화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흥행여부를 떠나 한중일 그리고 타이완의 역사관의 차이를 묻는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대략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945년 패전으로 인하여 타이완을 떠나게 된 일본인 교사가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서 타이완에서 사랑하던 여성에게 편지를 쓰지만 발송하지 않는다. 60여년이 지난 후 그가 죽고 나서 발견된 이 편지를, 그의 딸이 그때의 주소로 보낸다. 식민지시대의 주소로 보냈기에 주소불명으로 배달되지 못하고, 임시로 우편배달부를 하는 남자 주인공이 그 편지를 뜯어 읽어보게 된다. 남자 주인공은 때마침 열리는 지역축제에 주민들로 이루어진 밴드에 참가하게 되고, 이 밴드를 주관하게 된 일본인 여성과 하룻밤의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녀도 그의 방에서 그 편지를 읽게 되고, 둘 사이에는 편지를 매개로 하여 사랑이 싹튼다. 이렇게 60년 전의 타이완인과 일본인의 사랑이 현재의 사랑과 중첩되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영화가 식민지시기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개 교사인 내가 민족의 책임을 어떻게 지겠냐. 시대의 숙명은 시대의 죄. 난 가난한 교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어조의 편지글을 통해, 영화는 당시 상황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현재의 주인공들이 그 사랑을 대신하여 이루어주는 것이다. 이를 타이완과 일본의 관계로 대치해 본다면 식민지시대에 대한 일본의 반성이나 책임보다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보낸 60년이라고 해석되는 것이다. 흥행성적과 금마장 수상이 보여주듯이 타이완에서의 전반적인 평가는 호의적이지만, 타이완의 한 논자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감상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에 이 영화는 ‘대독초(大毒草)’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차이나네트 2008년 12월 9일) 중국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일본에 세뇌된 의식에 의해 오염된 듯한 영화”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였고, 이러한 일련의 반응이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다.(한국일보 12월 22일) 하지만 일본에서의 반응은 달랐다. 일본의 한 신문에서는 마잉지우 총통의 등장으로 타이완과 중국대륙과의 관계가 긴밀해지는 움직임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한 이 영화를 대환영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시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대만의 특색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서일본신문 2009년 1월 8일)

일본 식민지시기에 대한 타이완의 평가와 반응이 한국, 중국과 많이 다르다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그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는 서남포럼의 『제국의 교차로에서 탈제국을 꿈꾸다』(창작과 비평사, 2008)의 지면을 통해서, 그리고 작년 12월의 타이완의 국립정치대학 타이완문학연구소에서의 학술대회에서도 거듭 제기된바 있어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타이완이 계속해서 동아시아의 관점의 엇갈림을 알 수 있게 하는 문제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중요하고, 타이완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가 일본과의 관련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일본과의 관련을 제거한다면 영화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사실 60년전의 편지 이야기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시간은 단지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기본적인 내용은 최근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흡사하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소녀부터 할아버지까지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교향악단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가 그려졌던 것처럼, 『해각7호(海角七號)』에서도 타이완의 최남단 항춘(恒春)을 배경으로 마을주민으로 이루어진 밴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뻬이에서 밴드로 활동하다 첫 장면에서 기타를 내려쳐 부숴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모델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일이 들어오지 않아 관광가이드를 하는 여주인공, 부인이 도망을 가서 상심하여 고향으로 온 타이뻬이 특수부대 출신 교통경찰, 아버지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 뿐 청소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소녀 등이 주요 인물들이다. 이러한 인간군상들과 더불어 언어적으로도 타이완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영화 대사의 대부분은 타이완말(台語)로 진행되지만 거기에 표준말과 일본어도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고 통역이라는 행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밴드의 이름은 ‘마랍상(馬拉桑)’으로 술주정뱅이를 의미하는 타이완 원주민 아미족(阿美族)의 말이다.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인생에서 좌절을 겪은 이들이 희망을 갖고 지역공동체를 유지해 나가자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반길 수 있는 내용이기에 중국에서 상영허가가 난 것이 아닐까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타이완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앞으로도 동아시아의 제문제를 다시 보게 하는 촉발제가 될 것이다.

강태웅 (광운대 일본학과 교수/서남포럼 운영위원)

▶출처: 서남포럼 뉴스레터 서남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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