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날 때 받은 유산이다. 나는 그 유산을 벌써 다 써버렸다.”
고은이 정의한 ‘사랑’은 이렇다. “소유에의 장님. 헌신에의 장님. 이 두 장님만이 사랑을 완성한다.”
‘기억’에 대한 정의는 마지막 한 줄에 반전이 있다. “아, 기억이 비로소 인간을 인간적이게 한다./기억의 딸이/상상이다./상상의 어머니가 기억이다.//기억은 이 세상 이전까지 닿아 있다.//가 버린 세계를 현재에 머물게 하는 유일한 시간의 우정이다. 기억은.//그러나 기억은 거의 틀린 기억이다.”
‘천국’은 250여 개념어 중 가장 간결하게 규정했다. 바로 “없다”다. 반면 “지옥은 이 세계 안에 있다”고 적었다. 예술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권력에 반드시 불필요한 건 ‘광기’란다. “무덤 아니고는 어디에도 파묻을 곳이 없”는 것은 ‘욕망’이다. 그가 정리한 ‘죽음’의 설명도 재미있다. “나 죽을 때 몇 사람 짝짝 박수쳐라.”
그가 두손 두발 다 든 개념어는 ‘인간’이다. “인간을 정의하지 말자. 인간은 개념화가 불가능하다.”
이 개념어들은 수년 전 프랑스의 한 출판사에서 키워드만 던져주곤 마음대로 정의를 내려보라고 한 데에서 출발했다. 고은 시인은 “그냥 내 멋대로 적어봤다”고 했다. 멋대로 적어낸 글조차 시가 되고 철학이 되는 경지다.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