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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항공사 젠니쿠 경영권 분쟁 - '낙하산파' 회장 토박이 사장 축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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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국내항공사중 최대인 젠니쿠(全日空)에 최근 심각한 경영권분쟁이 발생해 일본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사태추이에 따라 관료출신의 낙하산인사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4년 임기 만료를 한달 앞둔 후가쓰 세이지(普勝淸治.64)젠니쿠사장이 갑자기 사표를 낸 것은 지난 주말.임원진 개편을 놓고 벌어진 와카사 도쿠지(若狹得治.82)명예회장.스기우라 다카야(衫浦喬也)회장과의 마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젠니쿠 토박이인 후가쓰 사장은 항공분야의 규제완화에 맞춰 국내노선 위주의 젠니쿠를 과감하게 국제화해야 한다며 확대전략을 밀어붙여 온 인물.그는 현재 30%인 국제선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미.일항공회담 과정에서도 일본 운수성과 사사건건 맞부딪쳤다.

반면 와카사 명예회장과 스기우라 회장은 둘 다 운수성 사무차관 출신의'낙하산파'.이들은 이번 인사에서 후가쓰에 맞서 자신들과 가까운 두명을 부사장에 앉히도록 종용했다.

후가쓰는“인사권은 대표이사인 사장의 고유권한”이라며 버텼으나 결국 밀리고 말았다.

운수성을 손안에 쥔 와카사는 평소“나카다초(永田町.일본국회)의 정치인들만 설득하면 모든 게 끝난다”고 강조해 온 인물.이번에도 자신의 넓은 인맥을 총동원해 후가쓰를 압박해 수성(守成)에 성공했다.

신임사장에는 명예회장과 가까운 요시가와 겐조(吉川謙三)젠니쿠빌딩 사장이 선임됐다.취임 직후 그는“명예회장.회장도 대표권이 있는 만큼 합의제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16일에는 명예회장의 장남을 계열호텔 사장에 전격 임명해 은혜를 갚았다.

낙하산파들이 사내투쟁에는 승리했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불투명하다.일본언론들은 일제히“일본항공(日航)을 운수성 인맥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항공분야의 규제완화 가능성은 더욱더 멀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며 비판하고 나섰다.

개별회사의 인사에는 언급을 자제해 온 일본언론들이 이례적으로 젠니쿠의 경영갈등을 크게 다루기 시작하자 일본 운수성도“와카사 명예회장 때문에 우리까지 욕을 먹을 판”이라고 난감해 하고 있다.

도쿄=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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