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보트 피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류 최초의'보트 피플'이라면 구약성서'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일행을 꼽아야 할 것이다.세상에 악이 충만하고 인간들이 날로 타락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를 후회하고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려 다짐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하지만 의로운 사람까지 멸망시키는 것은 창조의 본뜻에 어긋나므로 노아의 일가족만은 살려두려한 것이 보트 피플의 효시였던 셈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1백2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방주(方舟)의 크기는 길이 약 1백50,폭 약 25,높이 약 15의 3층 구조였다고 한다.이 배에는 노아 부부와 세아들 내외 등 8명의 인간과 모든 동물이 한쌍씩 타고 있었는데,40일 밤낮 줄기차게 쏟아져내린 폭우로 세상의 모든 것이 자취를 감췄음에도 불구하고 이 배만은 터키 동쪽 아라랏 산에 무사히 착륙했다고 전한다.

'창세기'의 기록에 따라 여러차례에 걸쳐'노아의 방주'를 찾으려는 노력이 되풀이됐지만 조그마한 잔해조차 발견된 적은 물론 없다.배의 규모가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모든 동물들을 한쌍씩 태울 수 있었는지 의문이 생길 법도 하지만 하나님이 하필이면 살려두고 싶은 인간을 배에 태웠느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없지 않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이를 축복하여 내린 말씀은“생육(生育)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다.인간이'땅에 충만하라'는 자신의 뜻을 거역했을 때 땅과 인간을 함께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은'물'뿐이었고,살아남아야 할 인간을 살아남게 할 수 있는 것도 또한 물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보트 피플도 그 의미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땅에서 살아가는게 죽음만도 못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 인간이 찾아나설 수 있는 곳은 물 뿐이다.설혹 물 위에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땅보다는 물을 택한다.패망이후의 월남사람들도,뗏목에 의지해 탈출을 시도해온 수십만명의 쿠바사람들도 그랬다.그들은 한결같이'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것'이라고 절규한다.더 이상 버티기 힘들게 된 북한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탈북한 두 가족을 계기로 더 늘어날 전망이지만 북한사람들이 지구상의'마지막 보트 피플'이기를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