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합법 살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성경』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살인자는 카인이었다. 신이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고 자신이 바친 제물은 퇴짜 놓자 그만 홧김에 동생을 죽이고 만다. 그는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신에게 뻔뻔하게 거짓말까지 한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신의 분노를 산 카인은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나 두고두고 죗값을 치르게 된다.

세상의 하고 많은 죄 중 가장 중한 게 살인이다. 죄가 무거울수록 벌도 엄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묵자는 말한다. “사람 한 명을 죽이면 의롭지 못하다 하고 한 번은 죽어야 할 죄가 있다고 한다…열 명을 죽이면 의롭지 못함이 열 배가 될 것이니 열 번 죽어야 할 죄가 있을 것이다…하지만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이는 자가 있으면 도리어 찬양하면서 의롭다고 한다.” 수천·수만의 목숨을 앗아가는 ‘합법적 살인’, 바로 전쟁에 대한 비판이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이 침공해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자 지구촌에 반전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군이 어린이들의 대피처인 유엔 학교까지 공격한 걸 두고 ‘집단 학살’이라는 원성이 자자하다. 하마스 대원들이 민간인 차림으로 민간인 거주지에 숨어 공격을 해대니 도리가 없었다는 게 이스라엘 측 항변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저서 『폭력의 시대』에서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이 흐릿해진 점을 현대 전쟁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군사작전은 전투원들 간에 이뤄지고, 민간인은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헤이그 조약’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체 사망자의 5%에 불과했던 민간인 희생자 비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선 66%나 됐다. 요즘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에서도 사망자의 40% 이상이 어린이와 여자들이라고 한다.

아무리 전쟁을 합법적인 살인으로 인정한다 해도 그건 군인 대 군인에 국한한 얘기일 뿐이다. 한쪽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고, 다른 한쪽은 민간인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한 채 벌이는 이 전쟁은 결코 의로울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양쪽은 쉬이 총을 내려놓을 기세가 아니다. ‘카인의 후예’라는 낙인이 두렵지도 않은 것인가.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