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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숙제 너무 어려워 - '통일방안' '전자무역현황'등 어른수준 예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회사가 어려울 때 근로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부천 B초등학교 5학년)''남북한의 통일방안(서울 C초등 5학년)''전년도 우리나라 전자무역 현황조사(서울 S초등 5학년)''훈민정음 언해본에 대한 조사(서울 B초등 5학년)''해외에서 활약하는 동포에 대한 조사(서울 P초등 4학년)'등. 초등학생의 숙제가 지나치게 까다롭고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다.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글짓기나 조사과제를 보면 부모도 엄청나게 고민해야 하고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관한 글짓기를 하라'는 초등학교 1학년 숙제는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감이지 초등학교 1학년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서울 S초등 1학년 학부모 C씨는 한글을 갓 깨우친 아이에게 숙제를 설명하느라 당혹스러웠다고 털어 놓는다.

서울 P초등 5학년 학부모 J씨는“아이가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과학이나 사회 조사숙제를 돕기가 벅차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면 결국 전과를 그대로 베껴간다”고 우려한다.

열번씩 베껴쓰라는 식의'단순노동'으로 초등학생을 신물나게 만들던 숙제가 차츰'고차원화'하고 있는데 대해 상당수 학부모들은“대체 아이 숙제인지 어른 숙제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모르는 내용을 아이에게 설명하려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고'학교에서 학습 부담을 집으로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느낌마저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의 숙제를 도울 시간이 없는 부모중에는'만들기'등 어려운 미술숙제는 아예 미술학원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경우가 적지않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 초등장학과 조병일(趙炳日)장학사는 이에 대해“초등학교에 열린교육이 도입되며 일제고사 형식의 시험이 폐지되고 최근 서술식.논술식.실험.실습.관찰등 다양한 평가방법이 도입되면서 숙제 형태도 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교육전문가들은 난해한 숙제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압박감과 혼란을 주며 교육적 효과도 적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객관식을 맹신하는 교육풍토에서 숙제가 주관식이나 관찰.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변화라는데 동감한다.하지만 숙제해결방법 안내,참고자료 제공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교원대 강충렬(姜忠烈)교수는“어린이들에게 부담스런 숙제는 오히려 어려움과 좌절감을 느끼게 해 전과나 참고서에 의존하거나 부모들의 학원이나 과외의존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창의력이나 탐구심을 저해하는 전과등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교사가 충분한 참고자료와 학습방법에 대한 안내와 함께 수준과 양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이인제(李寅濟)박사는“교사가 숙제의 내용에 대해 얼마나 충실한 사전학습 준비를 해줬느냐와 학생이 혼자 힘으로 해결한 숙제에 대해 그 노력을 철저히 인정해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또 학부모들은 아이 나름대로 해결해 보도록 해야 과제해결 능력이 길러진다고 말한다.

서울 동답초등학교 정수원(鄭秀元)교사는“엄청나게 많은 교과서 학습량과 부적절한 내용구성,전교과목을 담당해야하는 부담,잡무등이 숙제 안내를 미흡하게 만드는 근본 요인”이라며 이같은 문제해결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강양원 교육전문기자

<사진설명>

늘어나고 있는 서술식.관찰등 사고력과 체험을 중시하는 숙제를 혼자 힘으로

할수 있도록 안내와 지도가 필요하다.사진은 과제물을 들고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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