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景氣 파란불 - 업종별 현장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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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근 경기회복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죽을 쑤던 산업경기가 주력업종을 중심으로 반등을 시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수출산업인 반도체.철강.조선.석유화학등이 기지개를 켜는 업종.이들 산업은 전반적인 내수부진에도 불구하고 수출회복으로 점차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그러나 자동차.가전.섬유.기계등의 업종은 여전히 회생의 계기를 찾지 못한채 침체의 터널을 헤매고 있다.

이처럼 최근 일부 실물경기를 회복시키는 조건으로 수출시장의 수요증가및 수출가격반등,엔화 강세전환등이 꼽히고 있고 내수부진,개선 안된 수출상품의 채산성등은 여전한 악재들이다.

◇반도체=올들어 줄곧 상승세를 타던 16메가D램 반도체가격이 지난달 중순 10달러선 아래로 다시 떨어지자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물론 재계 전체가 바짝 긴장했다.

지난해의 반도체가격폭락 악몽이 되살아날까 해서였다.4월말~5월초 연휴가 많았던 일본 업체들이 많은 물량을 미리 내놓은데다 인텔이 이달부터 CPU(중앙처리장치)가격인하를 예고해놓은 상태여서 수요도 줄었던게 원인이었다.

가격하락은 다행히 불과 수일만에 회복됐다.국내 반도체업계는 앞으로의 가격추이에 대해“일시적 가격하락은 있겠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오름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낙관하고 있다.

LG반도체의 김양규(金良奎)해외영업이사는“주력제품인 16메가D램가격이 이달부터 본격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특히 6월께에는 반도체 경기가 본격 회복될 것으로 본다.

◇철강=포철.동국제강등 철강업체들은 최근 생산증대를 위해 공장 생산계획을 새로 짜고 있다.최근 수출경기 회복이 분명해지자 한보철강사태등으로 어둡던 업계가 아연 활기를 되찾는 모습이다.

세계적으로 공급과잉이 해소돼 열연강판등 주력제품의 수출가격이 반등하고 있기 때문. 올 1분기 철강재수출이 이미 전년동기비 28.3%나 증가한 26만~27만가량에 달했다.2분기도 국제철강가격 반등세가 이어져 수출이 살아나 경기를 부추길 전망. 그러나 국내 경기침체로 내수회복은 여전히 기대하기 힘들다.

◇조선=국내 조선업계 사장들은 요즘 수출선박가격이 바닥이라고 보고 가격 올려받기 묘안을 짜내느라 분주하다.일본업계가 99년까지 물량을 다 채워 배가 부른 상태라 지금이 호황기이던 93년에 비해 20%상당 떨어진 선가(船價)를 올려받아 채산성을 개선할 호기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산성을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선가가 문제다.선가상승은 일본업계와의 공조체제가 사실상 무너져 우리 업계간 협력이 잘 안될 경우 물량은 많이 따도 손해보는 현상이 이어질 전망. ◇유화=PVC(합성수지제품)등 일부 석유화학제품의 수출가격이 올들어 계속 오름세여서 업계가 반색하고 있다.기초원료인 나프타가격의 하향안정세와 함께 미국의 경기호조로 미국산 석유화학제품이 동남아지역으로 나오지 못해 그만큼 우리제품 수출여지도 넓어졌다.

그러나 유화제품을 많이 쓰는 중국정부가 최근 수출신용장 발급을 까다롭게 하는등 수입규제 정책을 펴는 것이 수출확대에 큰 애로다.

◇자동차=현대자동차는 울산공장 조업단축을 20여일만인 이달초 철회했다.그러나 재고가 늘면 다시 조업단축을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쪼그라든 내수시장을 선점하려는 업체간 경쟁만 치열해지고 있다.현대와 대우자동차가 4월 내수실적 1,2위를 놓고 민망할 정도의 신경전을 벌인 것도 그 때문이다.올해 안에 내수가 되살아날 가능성을 보이지 않는게 더욱 큰 문제다.

물론 하반기 대선을 앞둔'반짝경기'와 정부 당국이 수요진작을 위해 모종의 정책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은 있다.

◇가전=3월부터 시작된 가전제품 할인판매 경쟁이 장기화되고 있다.업체마다 각종 이벤트 개최,무이자 할부판매등의 판촉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내놓고 있다.값을 깎아주더라도 일단 많이 팔고보자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같은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가전제품 내수판매는 경기가 안좋았던 지난해보다 5~10% 더 줄 정도로 부진하다.

수출 역시 1분기중 5%정도 줄었다.최대 수출품인 컬러TV는 1분기중 6.3%가 줄었고 VCR는 무려 39.4%나 줄었다.최근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받던 러시아에 재고가 잔뜩 쌓인데다 엔저로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미국.일본.유럽등 선진국 수출도 여의치 않은 때문. ◇섬유=올해 중반이 돼도 회복기미가 없다.90년대들어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지난해 상황이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섬유경기 견인차인 수출부문이 부진한 때문이다. 반면 의류등 섬유제품류 수입은 거꾸로 계속 늘어 부진한 내수를 더욱 압박하는 상태다.

◇기계=대부분 기계업체들이 올 매출이 연초 목표 대비 60% 수준도 못채우자 애태우고 있다.불황으로 국내 설비투자가 부진한 게 원인이다.

따라서 주요 기계업체들은 올 매출목표 수정에 들어가는 한편 재고 줄이기에 비상이 걸렸다.정부의 꾸준한 사회간접시설(SOC)공사덕에 건설 중장비는 그런대로 팔리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유규하.박영수.홍병기 기자

◇도움말 주신분▶김양규(金良奎)LG반도체 해외영업이사▶김영길(金榮吉)철강협회 상무▶조순제(趙淳濟)조선공업협회 전무▶이선규(李宣揆)대한유화 영업상무▶김만유(金滿猷)현대자동차 승용차마케팅담당이사▶이동화(李東和)자동차공업협회 이사▶송태정(宋泰政)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조한구(趙漢九)대우전자 TV마케팅 담당이사▶이상경(李相慶)섬유산업연합회 부장▶김광석(金光錫)대우중공업 기계담당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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