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경진의 서핑차이나] 중국 ‘아홉수 징크스’와 마오쩌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에선 최근 봉구필난(逢九必亂), 봉팔필재(逢八必災)라는 말이 유행이다.

‘봉구필난’은 9자가 들어가는 해에는 크게 어지러웠다는 뜻으로 쉽게 풀면 ‘9년 징크스’다. ‘봉팔필재’는 8이 들어가는 해에는 각종 재해가 빈발한데 착안해 중국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이 9년 징크스는 중국의 음양철학의 ‘아홉수’에서 연원해 제법 논리가 있다. ‘양이 지나치면 음이 되고(陽極生陰)’, ‘음이 지나치면 양이 된다(陰極生陽)’는 음양 호환관념과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이 ‘아홉수’의 이론적 기초다.

아홉수가 되는 해는 인생의 ‘갈림길’이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풍습이다.
여기서 인생의 ‘아홉수’는 36살과 72살을 일컫는다.
음양론에서 북두칠성을 뜻하는 숫자 36과, 악신(惡神)인 지살(地煞)이 숫자 72인데서 연원한다. 이들 나이 혹 그 앞 뒤 일년은 모두 조심해야 한다. 그 해에 닥칠 액운을 막기 위해 붉은색 속옷을 입고 새해를 맞기도 한다.

또 중국인들은 천인감응을 중요시한다. 하늘의 별 하나하나와 지상의 사람 한명한명이 연결된다는 논리다. 별자리의 변화가 인간사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중국의 ‘9년 징크스’는 개인 차원의‘아홉수 징크스’를 역사적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최근 이런 음양론에 역사적 경험을 보탠 요참(謠讖)이 급속히 민간에 퍼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한 세기동안 9로 끝나는 해에 중국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먼저 20세기 첫 9년인 1909년은 연호가 바뀐 해였다. 1908년 33세의 광서제가 돌연히 죽었고 다음날 73살의 서태후가 죽었다.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즉위한 선통(宣統) 원년이 09년이었다. 그 해에 중국엔 내우외환이 거듭됐다.

1919년에는 5·4운동이 일어났다. 일본의 산둥(山東)반도 조차에 반대한 반제국주의운동이자, 잡지 ‘신청년’으로 대표되는 신문학, 신문화 운동이 5·4운동이다. 전통을 버리고 근대로 나아가는 변혁의 해였다.

1929년은 군벌혼전이 거듭된 한 해다. 국민당이 주도하는 국민혁명이 막바지에 이르러 2월 광시(廣西)파, 5월 펑위상(馮玉祥) 등의 지방 군벌을 진압했다.

1939년에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전개된 한 해였다. 수도는 충칭(重慶)으로 옮겨졌고 항일전쟁이 전 중국을 휩쓸었다.

1949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됐다.

1959년, 티베트에 진주한 중국공산당이 달라이 라마 14세에게 중국 군대 내에서의 강연을 요청했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 납치 음모가 있다고 여겨 반중국 시위를 시작했다. 무차별 진압이 이뤄졌고 달라이라마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대약진 운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기근이 전 중국을 휩쓸었다. 3,000만명이 아사했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 무력 충돌도 벌어졌다.

1969년에는 중국과 소련의 국경분쟁이 전쟁으로 비화됐다.

1979년,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1989년 6월4일 서방 언론에서 천안문 대학살이라고 부르는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다.

1999년에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난하이(中南海)를 손에 손을 잡고 둘러싸는 전대 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유고슬라비아의 중국 대사관을 나토 소속 미군기가 폭격한 것도 그 해였다.

한편, 중국에서는 9를 황제의 길수(吉數)로 여긴다.
그래서였을까? 마오쩌둥은 숫자 9를 무척 좋아했다.

마오쩌둥의 고향 후난(湖南)성 사오산(韶山)에는 마오의 별장이 있다. 마오의 침대가 놓여있는데 가로 세로 길이가 1.9m, 2.9m다. 중난하이의 마오쩌둥 거처 국향서옥(菊香書屋)에 있는 마오의 침대와 똑같이 만든 것이다.

마오는 1976년 9월9일 세상을 떠났다.
1927년 9월9일 추수봉기를 주도하면서 백면서생에서 불세출의 혁명가로의 새 삶을 시작했다.
1945년 9월9일에는 장제스와의 국공담판을 위해 날아간 충칭에서 국학자 궈모뤄(郭沫若)를 만나 “前途是光明的,道路是曲折的。”라는 시구로 그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다.
1949년 9월9일에는 신중국의 ‘임시헌법’을 만들었다. 린뱌오(林彪)의 쿠데타가 발각된 것도 1971년 9월9일이었다. 이렇게 9자와 인연이 깊었던 마오는 76년 9월9일 0시10분 저세상으로 떠났다.

마오쩌둥은 아홉을 좋아했고 9월9일 저세상으로 갔다. 중국의 고질적인 ‘아홉수 징크스’는 과연 21세기 첫 9년을 비켜갈 수 있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