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음모론에 지지 않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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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26면

‘미네르바’가 잡혔다. 사이버 ‘경제 대통령’으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실체는 그러나, 초라했다.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백수란다. 환 딜러도, 50대도 아니고 증권사 근무경력도 없었단다.

고란과 도란도란

그가 ‘뜬’ 이유는 몇 가지 예측이 적중한 덕이다. 산업은행이 인수하려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예견이 대표적이다. 원-달러 환율의 1500원 돌파도 맞혔다. 코스피 지수가 500 선까지 추락하고 2008년 하반기 물가 폭등과 식량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헛발질’도 권위에 흠집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미네르바가 정말 뜬 이유는 그가 활약(?)한 무대가 ‘2008년 한국 사회’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지배한 시공간. 이런 때는 음모론이 득세한다. 『화폐전쟁』이 화제가 된 것도 비슷하다. 지난달 한 언론사가 기업·은행의 최고경영자(CEO) 8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6명이 이 책을 읽었다고 밝혔다.

이 책은 미국에서 금융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쑹훙빈이 썼다. 화폐를 통해 자본주의와 금융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분석했다. 21세기 세계를 지배할 결정권은 ‘핵무기’가 아니라 ‘화폐’라는 것이 책의 요지다. 그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일어난 중대 사건의 배후에는 모두 국제 금융자본 세력(로스차일드 가문)이 있다고 주장한다. 제1·2차 세계대전, 1930년대 대공황,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아시아 금융위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이 그 세력 때문이란다.

음모론의 고전으로는 『그림자 정부』가 있다. 이 책은 세계를 움직이는 단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 ‘프리메이슨’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전쟁, 제2차 세계대전, 걸프 전쟁, 70년대 석유 파동, 그리고 90년대 아시아의 경제 몰락까지. 프리메이슨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고 해석한다.

2009년, 여전히 불안하다. 전 세계가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경제가 살아날 날은 아직 먼 듯 싶다. 음모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가자지구 분쟁을 놓고 증시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음모”라고 단언했다.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전쟁이기 때문이란다.

다른 이의 시나리오는 더 구체적이다. 전쟁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미국의 재정적자에 부담을 주지 않는 곳. 둘째, 물가 상승을 불러와 전 세계 소비를 위축시키지 않는 곳. 셋째, 과잉 공급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 예상 지역은? 상상에 맡긴다.

음모론은 그러나, 후행한다. 사건이 터진 후에야 ‘그럴 줄 알았다’며 위기를 부풀리기 일쑤다. 예견보다 사후 해석인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대공황과 현 경제위기는 비슷하면서 많이 다르다. 결정적 차이는 위기 극복을 위해 전 세계가 공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섣부른 낙관도 문제지만 근거 없는 비관은 더 위험하다. 경제는 호·불황을 오가고 증시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음모론에 사로잡혀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시장은 언제나 ‘음모론’을 이겨 내고 성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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