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2008 퓰리처상 작가 주노 디아스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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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문학동네
428쪽, 1만2000원

난…, 깡패와 사랑에 빠졌을 뿐이고, 그가 유부남인지 몰랐을 뿐이고, 알고 보니 그 마누라가 독재자의 여동생이었을 뿐이고, 난 비밀경찰에게 끌려가 죽도록 두드려 맞았을 뿐이고, 총 백육십칠 군데를 다치고 뱃속의 아이도 잃었을 뿐이고…. 이 책을 보면 요즘 유행하는 안상태식 ‘뿐이고’ 개그가 떠오른다. 지금도 ‘여행유의’ 딱지가 붙은 나라 도미니카공화국.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도미니카 독재 정권의 망령 속에서 몰락한 한 가문의 이야기를 ‘욕쟁이 할머니’같은 어투로 경쾌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책으로 2008년 퓰리처상을 거머쥔 작가 주노 디아스(41)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독재의 실상을 어떻게 체험했나.

“비행기를 타고 건너왔다고 해서 공포가 사라지진 않는다. 부모님은 우리를 미국에 잘 적응하기보다는 그분들이 평생 겪었던 독재로부터 벗어나 살아남도록 가르치느라 더 애썼다. 마치 도미니카에서 사는 것처럼 훈련 받았다.”

-지금 도미니카의 상황은 어떤가.

“일단 한국보다 훨씬 가난하다. 도미니카 공화국을 ‘가짜 민주주의’라 부르고 싶다. 사람들은 4년마다 투표를 하지만, 실제 권력은 소수 그룹의 손에 있다. 투표로 물러나게 할 방법은 전혀 없다.”

-그래도 많이 변하지 않았나.

“새로운 정당,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지만 독재와 차별 아래에서 신음하는 이들의 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최근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한국인을 가혹하게 다뤘던 시절보다 확실히 많이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인을 열등 국민으로 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돼 매우 언짢았다. 모든 것이 변한다 해도 종종 그 이면엔 많은 게 그대로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비극적인 한 가문과 국가의 역사를 ‘푸쿠(저주)’에 빗대 희극적으로 그렸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 역사 이야기만 나오면 꾸벅꾸벅 존다. 그러나 저주, 초자연적인 저주에 대해 운을 떼면 관심을 갖는다. ‘푸쿠’는 역사 울렁증이 있는 독자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도 ‘우리는 알든 모르든 역사의 손아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었다.”

-“우리의 소년은 나즈굴도 아니었지만 오르크도 아니었다.”(145쪽)와 같은 서술 방식이 눈에 띈다.(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나즈굴은 사우론의 오른팔, 오르크는 졸개다.)

“SF소설과 만화(일본식 표현 ‘manga’가 아닌 ‘manwha’로 썼다), 판타지 소설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런 장르의 수많은 주제들이 독재와 역사, 전쟁과 가난 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관련이 있다. 이 서사들이 세상을 설명해내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영향을 받은 작가나 작품은.

“찰스 디킨스, 윌리엄 포크너, 가르시아 마르케스같은 옛날 작가, 에드위지 댄티캣이나 한나 틴티 등의 젊은 작가도 좋아한다. 한국의 윤미경같은 만화가들도 매우 좋아한다.”

-책에는 “한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만화영화를 대량 제작하기 이전”이라는 구절이 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떤지.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많은 한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자랐다. 맛있는 김치와 맛없는 김치를 구분할 줄 알고, 뉴저지에서 반찬(banchan)이 가장 훌륭한 한국 식당을 소개할 수도 있다. (보스턴에서는 절대 한국 음식을 먹지 마라. 별로다.) 어렸을 때 길고 끔찍했던 한국전쟁과 박정희 정권, 그리고 광주 항쟁에 대해 들었다. 박종철의 비극적인 죽음이 어떻게 모든 걸 바꿔놓았는지도 안다. 한국 남자는 태어나서 오직 세 번(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가실 때, 그리고 조국이 망했을 때) 운다는 말도 들었다. 한국 댄스 팀 ‘Last For One’이 2005년 브레이크댄스 대회에서 우승한 사실도 안다. 왜냐고? 그 팀을 응원했으니까!”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수많은 독재자들을 물러나게 한 한국인을 대단히 존경한다. MIT 교수로 재직하며 만나 본 한국 학생들은 유학생이든 교포든 늘 훌륭했다. 최혜선이란 똑똑하고 강인한 친구가 있다. 어느 날 몇몇 남자들이 나와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가장 먼저 맞서 싸우려 나선 건 그녀였다. 한국인이기에 그런 여성이 나올 수 있었을 거다.”

글=이경희 기자 , 사진=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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