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치맛바람에 웃고 우는 코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요즘 프로농구장에 젊은 외국인 여성들이 자주 눈에 띈다. 미국 휴가 기간인 연말연시를 맞아 외국인 선수들의 여자 친구나 부인이 대거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편이나 애인의 경기력에 보탬이 될까 안 될까.

LG 선수단에서 7시즌째 통역을 맡고 있는 정건씨는 “통계적으로 볼 때 여자 친구가 왔을 때 70% 이상은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향수병을 잊고 경기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나름대로 해석을 붙였다. “부인이나 여친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더 빨리 더 높이 뛰는 것 같다”는 것이다.

삼성 이성훈 사무국장은 “테렌스 레더가 입이 짧은 편인데 어머니와 부인이 교대로 와서 음식을 해주는 덕분에 잘 먹고 열심히 뛴다”고 전했다. KTF 최현 과장은 “아무래도 젊은 선수들이라 혼자 있으면 이태원 등 유흥가에 나갈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 친구나 부인이 오면 그런 걱정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KCC 정찬영 사무국장은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밤새 전화하다 컨디션을 망치는 경우가 있는데 여자 친구가 오면 그런 문제가 없어진다”고 했다.

여자 친구 앞에서 개인 기록만 올리려는 선수도 일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여자 친구들도 농구에 대한 식견이 높은 편이어서 경기 후 “개인 플레이를 하면 직업을 잃는다. 팀 플레이를 하라”고 나무란다는 것이다.

부인이나 여자 친구를 지나치게 사랑해 컨디션을 망치는 일도 있다. 오랜만에 만나 그동안의 회포를 한꺼번에 풀고 아침에 느릿한 걸음으로 나타나는 선수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랑싸움이라고 한다. LG 정건씨는 “자기들끼리 싸우고 나면 기분이 상해 경기력이 엄청나게 떨어진다”며 “그래서 각 팀 외국인 선수 담당 직원은 연인 싸움 중재의 전문가가 다 됐다”고 말했다.

그래도 득실을 따지면 여자 친구가 있는 것이 훨씬 좋다. KCC 정찬영 국장은 “여자 친구들이 대거 오는 연말연시 프로농구의 경기력은 올라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부는 반대다. “우리는 연말연시가 항상 위기다”고 말했다. 연고지인 원주의 도시 규모가 작아 할 일 없고 답답해하는 애인이나 부인들이 남친(남편)에게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이다. 동부의 외국인 선수 웬델 화이트는 얼마 전 부인이 온 뒤 슬럼프에 빠졌고 급기야 구단은 그에게 부인 동행 금지령을 내렸다.

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