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이타이이타이'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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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를 호소하고 있는 경남 고성군 삼산면 병산리 서정진 할아버지가 3일 폐쇄된 제일광산 갱 입구에서 흘러나온 푸른 침출수를 가리키고 있다. [고성=송봉근 기자]

"팔.다리가 쑤시고 뼈마디가 아팠지만 원인을 모르고 살았다 아잉교."

구부러진 허리로 10여년을 생활해 온 경남 고성군 삼산면 병산리 김모(70)씨는 논일을 하다 마을 뒷산을 가리키며 분통을 터뜨렸다. 마을 뒷산에는 1953년부터 삼아.제일 등 4개의 구리 광산이 운영되다 90년대 초 폐쇄됐다.

환경운동연합 부설 수질환경센터가 3일 이 마을 회관에서 "주민들 몸 속의 카드뮴 농도를 조사한 결과 일본의 대표적인 공해병인 '이타이이타이병'(카드뮴 중독증)으로 의심된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이 공포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공단에서 카드뮴 중독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있지만, 광산 인근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런 증세를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질환경센터는 이날 "마산 삼성병원 산업의학과에 의뢰해 전체 300여명의 주민 가운데 7명의 소변을 채취해 카드뮴 농도를 조사한 결과 3.8~11.5㎍/g.crea로 나타났다"고 밝혔다(1㎍/g.crea는 고체화된 소변 1g가운데 카드뮴이 100만분의 1g 들어있다는 뜻).

이들 중 4명은 5㎍을 넘어섰고, 오염도가 가장 심한 최모(55.여)씨는 11.5㎍으로 나타났다. 노동부 산업안전공단의 작업환경 기준에는 일반인은 2㎍, 카드뮴 전문 취급자는 5㎍이 허용 기준치다. 검사를 맡았던 마산 삼성병원 산업의학과 이철호 교수는 "10㎍가 넘으면 콩팥에 이상이 생기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마을 이장 양창수(58)씨는 "집안 식구 모두가 뚜렷한 이유 없이 뼈가 부러지는 사고로 수술을 받은 가구가 수두룩하며 외지에 나가 있는 자녀들에게 비슷한 증상이 나오는 가정도 많다"며 "주민들의 절반 정도가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본지 취재진이 3일 현지를 확인한 결과 폐광 입구의 계곡에는 청록색 물이 흘러 다른 계곡에서 나오는 맑은 물과는 확실히 구분됐다.

고성=김상진 기자, 강찬수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이타이이타이병=1910년께 일본 도야마현 진즈강 유역 주민들 사이에서 팔. 다리뼈가 부러지고 뼈가 줄면서 키가 작아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심한 통증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했고 '이타이이타이병'으로 불렸다.

'이타이'는 일본어로 '아프다'는 뜻이다. 68년 5월 뒤늦게 강 상류의 광업소 폐수에 포함된 카드뮴이 병의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국내에서는 90년대 초반 경기도 광명시 가학광산 주변의 토양과 여기에서 생산된 쌀, 주민의 혈액 등에서 카드뮴이 검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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