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세계화 이벤트 質로 승부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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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민선자치의 변화현장을 10여곳 방문한 적이 있다.여러가지 긍정적 변화가 전개되고 있으나 우려되는 징조도 적지 않았다.현재 상당수 도시들이 세계적 수준의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지방화가 세계화로 승화되기 위해서는'세계화 이벤트'를 유치,개최하는 것이 우선 급한대로 필요할 것 같다.그런데 국제적 이벤트는 의욕만으로는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어렵다.

국제적 행사는 세계의 넓은 들판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고,안으로는 문화.사회.경제적으로 지속되는 효과를 거둘 때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지방정부들에 의해 치러진 세계적 행사엔 광주비엔날레.무주겨울유니버시아드대회 등 일부 성공적 행사도 적지 않다.그러나 지금 열리고 있는 97고양세계꽃박람회는 고양시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세론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낭패는 어디서 오는가.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지방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있는 것 같다.아직도 지방에서는'기관장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의 일방적 결정과 졸속적 시행관행이 상존하고 있다.행사를 유치하는 결정이 단순한 아이디어 선택차원에서 이뤄지지는 않았는지 의구심이 간다.여기에 선거는 다가오고,저간의 정치적 사정으로 급해진 마음도 한몫 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면 성공적인 세계화 행사의 수준은 무엇이며,어떻게 유치해 치러내야 할 것인가.가장 중요한 것이 세계화 이벤트의 수준을 가름하는 일이다.세계적 수준이란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창의적인 전개가 가능할 때 달성된다.세계적 수준은 세계인의 눈과 귀에 과거의 행사와 비교해 독창적이고 미래지향적일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그리고 그 효과가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전후방 연관효과를 지속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행사를 지방정부에서 유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책결정과 시행노력에 다음과 같은 노력이 추가돼야 할 것이다.

첫째,경제성을 따져야 한다.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된 올림픽도 경제적 측면에서 실패한 경우가 적지 않다.사회.경제적인 전후방 연관효과를 추정해야 할 것이고,지역사업이지만 지역의 경계를 넘어가는 확산효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한 다음 유치결정을 내려야 한다.보통 단체장이 먼저 마음을 굳히고 들러리식의 공청회와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지방행정의 병폐는 결단코 극복돼야 할 것이다.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제적 행사를 민간 전문회사에 맡긴다.그것은 그만큼 행사 자체의 경제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우리도 지역적 차원에서는 중앙정부의 재정적 도움을 얻게 되면 이득이 될지 모르지만 국가적 관점에서도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가를 잘 따져야 한다.

둘째,대회의 내실을 기할 수 있어야 한다.겉치레 행사로는 세계화할 수 없다.전문가들의 평가에서 가위 세계적이 될 수 있게 자체평가 방식을 개발해 사후에 평가결과를 공개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이러한 평가도 역시 세계적인 전문가들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스포츠 행사는 스포츠의 기록면에서,연극제는 연극의 내용면에서 전문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셋째,참여와 그 효과 지속의 문제다.많은 사람이 발디딜 틈도 없이 모였다 해서 세계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대전 엑스포를 제대로 관람한 사람이 과연 몇명 있는가.지역주민의 참여는 단순히 많이 모으는데 있지 않다.시민사회를 활성화하는데 있다.그들이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자발적으로 나서게 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이러한 과정에서 과학적 분석을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현재 간단한 컴퓨터 모의실험으로써도 얼마든지 기다리는 시간.쓰레기 양.교통체증 등을 사전에 추정할 수 있고,대책을 강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세계 대부분의 주요 공연장과 놀이공간에서는 대기시간과 사람의 흐름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시도돼 그저께 꽃놀이와 같은 무질서는 없다.

이달곤〈서울대교수.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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