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유래>송파 거여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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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송파구거여동은 거암(巨岩)이란 이가 살았다 하여 거암리라 불리던 자연부락에다 일제때 이웃 잔버드리.개롱리.뒷말등을 합쳐 거여리(巨餘里)라 한데서 비롯됐다.

남한산 기슭에 자리잡은 까닭에 지금도 잠실쪽에서 남한산성을 오르려면 이 지역을 거쳐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거여동 산2 일대에 이르면 한강이 내려다뵈는 품이 풍수의 문외한에게도 영락없는 명당터니 이곳이 바로 임경업(林慶業)장군의 탄생과 연관된 개롱리(開籠里)란 자연부락이다.

풍수상 이곳은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으로 매화가 떨어지고 나면 매실을 얻게 마련이라 이곳에 묘를 쓰면 후대에 큰 인물이 보장되는 자리인 셈.지금으로부터 5백여년전 서울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임도령'이란 총각이 보릿고개를 맞아 광주에 사는 부자 친척에게 쌀줌이나 얻어볼 요량으로 무작정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송파나루에 닿자마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언덕을 넘어 남한산 기슭에 도달한 임도령은 이내 산속에서 길을 잃었고 한참을 헤매다 외딴집에서 묘령의 처녀를 만나 하룻밤을 함께 하니 상대는 다름아닌 5백년 묵은 암구렁이가 변한 용녀였다.하룻밤 인연이나마 임도령의 정(精)을 받아 승천케된 용녀는“고마움의 표시로 비늘 세개를 떨굴테니 그 자리에 묘를 쓰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로 오르니 과연 비늘이 떨어져 매화나무로 변하는게 아닌가.임도령은 그녀의 말대로 아버지묘를 이곳으로 옮긴 뒤 부자가 되었고 좋은 혼처에 장가를 가 손이 번창했으니 손자중 한명이 바로 임경업장군이다.임도령이 썼던 임장군의 증조묘는 5.16이후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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