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사 ‘일자리 나누기’본격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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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사 대표가 경제위기로 인한 실직 사태를 막기 위해 고통 분담 차원에서 워크셰어링(work sharing)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하기로 했다. 근로자 한 사람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그만큼 고용을 늘리거나 현재 고용 상태를 유지하는 제도다. 임금도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노조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일 재계를 대표하는 게이단렌(經團連)과 최대 노조인 렌고(聯合·전국노동조합총연합)가 15일 노사 고용대책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이 8일 보도했다.

제안은 게이단렌이 먼저 했다.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孵뵨夫) 게이단렌 회장(캐논 회장)은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심각한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워크셰어링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경제계의 신년 축하파티에서도 “기업들이 긴급 대응책으로 시간외 노동과 정규 노동시간을 줄여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다카기 쓰요시(高木剛) 렌고 회장은 7일 신년 하례회에서 “워크셰어링 도입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영자 측과 논의해보고 싶다”고 화답했다. 미타라이 회장은 8일 “워크셰어링을 검토하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 문제를 노조와 협의하겠다”며 협상을 공식 제안했다.

일 정부와 게이단렌·렌고는 2002년 ‘단시간 근무 정사원’을 제도화하는 조건으로 워크셰어링에 합의한 바 있다. 당시 히타치(日立)제작소와 샤프 등 일부 기업이 한시적으로 도입했으나, 경기가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착되지 못했다.

재계가 이번에 다시 워크셰어링을 제안한 것은 감원에 대한 사회적 비난 때문이다. 후생노동성은 3월까지 일자리를 잃게 될 비정규직 근로자를 8만5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일본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실제 실직자 규모가 이보다 몇 배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자민당도 일용직 파견을 금지하는 고용안정책 마련을 검토하는 등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노조 측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렌고 산하 비정규직 근로자 권익옹호단체인 ‘전국 커뮤니티 유니온 연합회’의 세키네 슈이치로(<95A2>根秀一<90CE>) 서기장은 “정규직 근로자들은 과로로 쓰러지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정규직 근로자의 빈 자리를 효율적으로 메우는 워크셰어링 제도 등 고용안정책이 올해 춘투(春鬪)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임금 삭감에 있다.

이노우에 히사시(井上久) 렌고 사무국 차장은 “근무시간 감소가 임금 삭감으로 이어지는 공식은 수용하기 어려워 아직 결론 내리지 못했지만, 비상 시국인 만큼 실업자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정부의 임금보전 정책과 재계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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