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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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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구약성경 창세기 11장에는 사람들이 벽돌을 구워 하늘 꼭대기까지 바벨탑을 쌓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탑을 쌓는 인간의 교만함에 분노한 하느님은 사람들이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해 공사를 중단시켰다. 성경에는 바벨탑의 높이가 얼마나 됐는지 나오지 않지만 중세 사람들은 6000m쯤 됐을 것으로 상상했다.

인류 역사에서 하늘을 찌르는 높은 건물, 마천루가 실제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1894년 미국 뉴욕에 세워진 맨해튼 생명보험빌딩의 높이는 106m였고, 1931년 세워진 뉴욕의 엠파이어 스 테이트 빌딩은 첨탑까지의 높이가 449m에 이르렀다.

이 같은 초고층 빌딩이 극복해야 하는 것은 신의 분노가 아니라 중력이었다. 높이 솟은 건물을 아래로 잡아당기려는 무자비한 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강도 콘크리트와 강철이 필요했다. 튼튼한 강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도시 스카이라인은 없었을 것이다. 벽돌과 석재로도 이론적으로는 1600m 높이까지 쌓을 수 있지만 한번 비틀리면 버틸 수 없어 실제로는 10~12층이 한계다.

바람과 지진도 문제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이 강해져 50층에 비해 100층에서는 네 배나 강한 바람을 맞게 된다. 건물이 약간씩 흔들리도록 하면 바람과 지진에 견딜 수 있지만 사람이 참을 수 없는 정도로 흔들린다면 곤란하다. 수천·수만 명이 생활하는 마천루를 위해서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도 만들어야 하고, 초고층에서 쓴 물이 아래로 떨어질 때 생기는 강한 수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런 기술의 뒷받침 덕분에 74년 미국 시카고에는 높이 527m의 시어스타워가, 2003년 대만 타이베이에는 높이 509m의 국제금융센터 빌딩(타이베이 101)이 들어섰다. 현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버즈두바이의 첨탑이 세워지고 있다. 최종 높이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818m쯤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맞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무역항인 제다에 높이 1000m가 넘는 건물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 서울 잠실에도 112층,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가 들어설 전망이다.

하늘을 향한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수퍼 태풍 같은 기상이변, 최악의 테러·화재·정전사고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바벨탑이 될 수밖에 없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