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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나들이] 김치의 놀라운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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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밥상의 대표 반찬인 김치는 재간둥이다.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넣어 함께 끓이면 얼큰한 김치찌개가 된다. 돼지고기 몇 점 더 넣으면 소주 안주로도 손색없다. 먹다 남은 김치는 잘게 썰어 밀가루 반죽으로 지진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김치전이다. 김치소를 툭툭 털어내고 토닥토닥 다져 만든 김치만두도 빠질 수 없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김치의 화려한 탈바꿈이다.

서울 서대문 로터리 하나은행 뒤편에 있는 '한옥집(02-362-8653)'에선 재간둥이 김치의 또다른 변신이 기다리고 있다. 묵은 김치로 만들어낸 김치찜이다. 일반적으로 한식의 찜은 고급음식이다. 갈비찜이나 도미찜처럼 이름부터 무게감 있는 고기나 생선이 등장한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 집의 김치찜은 그렇지 않다. 흔하디 흔한 김치가 주재료인 데다 값도 1인분에 5000원밖에 안한다. 찜이라고 해서 별난 음식이 아니란 말이다. 김치찌개를 살짝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김치를 통째로 얌전하게 뉘여 국물을 약간만 붓고 푹 익힌 것이다. 김치만 넣으면 너무 심심하니깐 적당히 비계가 달린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함께 익혔다. 김치를 손가락으로 쭉쭉 찢어 밥 위에 걸쳐 먹는다. 워낙 잘 익어 혀로 살짝 눌러도 김치 육즙을 내며 입안에서 녹아 내린다. 사이사이 김치 간이 밴 돼지고기를 젓가락으로 갈라내 김치에 싸서 먹는다. 돼지기름이 입가에 느껴지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다. 자박자박한 국물을 한술 뜨면 짭짜름하며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밥 위에 얹어 비벼 먹어도 좋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이 집 주인의 어머니가 겨울이 끝난 뒤 남은 김장김치로 색다르게 만들어내던 음식이란다. 너무 익은 김치는 군내가 나기 때문에 적당히 익은 것을 사용하고, 돼지고기는 얼지 않은 생고기를 쓰는 게 맛내기 노하우란다.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신문에 소개되는 것이 고마운 일이지만 문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달갑지 않다고 할 정도로 소박한 주인이다.

밑반찬으로 김치.멸치고추볶음.오이무침.김이 오르는데 김치찜을 먹느라 다른 반찬엔 손댈 틈이 없다. 두 사람이 와서 김치찜 1인분에 김치찌개 1인분을 시켜도 싫은 내색조차 없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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