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94. 김운용 화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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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강 둔치에서 열린 ‘김운용 화형식’ 장면.

2010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투표가 끝난 다음날인 2003년 7월 5일, IOC 부위원장 선거에서 나는 로게가 적극 지원한 헤이버그를 57대 43으로 눌렀다. 1992~96년에 이어 두 번째 부위원장이 된 것이다. 평창이 1등과 근소한 표차로 2등을 차지했고, 내가 부위원장이 됐으니 2014년 겨울올림픽은 유치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계속 이상한 소식이 전해졌다. 평창 지역구인 김용학 의원 등이 ‘김운용이 부위원장 되기 위해 평창을 찍지 말라고 방해하고 다녔다’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였다.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김학원 의원 등도 나를 심하게 몰아붙였다. 고건 총리 역시 여론을 의식했는지 사마란치와의 회동에 관한 내용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부정적 발언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강원도 춘천에서는 누가 어떻게 선동했는지 나에 대한 규탄 대회도 열렸다. 또 버스 100대를 동원해 강원도민들이 서울 여의도 한강 둔치에 몰려와 나에 대한 화형식을 했다. 평생 국위선양을 위해 봉사한 사람이 졸지에 매국노가 된 것이다. 화형식 뉴스를 보면서 ‘화형식은 대통령급 인사에게나 하는 것인데 나도 부시 정도로 대접(?)받으니 오래 살겠구나’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국회에서도 평창특위(위원장 김학원, 간사 김용학·함승희)가 회의를 열어 연일 나를 공격했다. 나는 2014년 올림픽 유치 시도를 위해서라도 IOC 내부 움직임을 설명해주려고 참석했는데 결과적으로 이용만 당했다.

매일 증인들을 내세워 내가 방해 내지 소극적 활동을 했다는 주장을 하다가 나를 평창 패배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더니 급기야는 구속력도 없는 ‘공직 사퇴’를 결의했다.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와 김용균 의원이 동료 의원에게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희생양으로 낙인 찍은 상태에서 그들은 나를 일방적으로 매도했고, 나는 국익에 반하고 개인의 영달만 노리는 파렴치한 사람이 돼버렸다. 이것은 ‘인격 살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김용학·공로명·최만립 등 4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고소건이 별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나는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됐다. 구속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명예훼손 소송을 취하하라는 권고가 있었으나 나는 응하지 않았다.

2004년 총선에서 낙선한 김용학씨가 두 차례나 구치소로 찾아왔다. 변호사라도 해야겠는데 소송이 걸려있어서 일하기가 힘드니 소송을 취하해달라는 간청이었다. 그러면서 “왜 최고 당사자인 김진선 지사를 고소하지 않고 나를 고소했느냐”고 묻기에 “평창이 2014년 올림픽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김진선 지사가 필요하다. 그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희생양은 한 명으로 족하다. 김용학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내친김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고소도 한꺼번에 다 취하했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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