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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언젠가 그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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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정태영 사장은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도 현대자동차 계열의 두 금융회사를 잘 이끌고 있다. 지난 번 금융위기의 교훈을 터득한 때문이다.

2003년 정태영(영문 이름 Ted Chung)은 43세의 나이에 현대자동차 산하 신용카드 자회사와 금융업 자회사의 겸임 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한국인의 카드 사용이 붐을 이룰 때였다. 바야흐로 신용카드 연체 쓰나미가 밀려올 참이었다.

Card Check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CEO

정 사장은 승진한 지 2주밖에 안 된 시점에서 참담한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 미수금이 10억 달러에 달했던 것이다. 정 사장이 이끄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그 위기를 극복해냈다. 미국의 세계적 금융회사 GE머니(GE Money)가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고, 정 사장이 경영 혁신을 대대적으로 단행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는 또 마리아 샤라포바 같은 테니스 스타와 비욘세 같은 가수를 동원해 마케팅에 주력했다. 다양한 새로운 신용카드들을 출시하면서 2003년 1.8%이던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을 2007년 14.3%로 끌어올렸다. 한국 기업들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도 일신했다. 올해 48세인 정 사장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영자 대열에 끼었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경영 스타일은 청와대와 서울시청이 벤치마킹하는 대상이 됐다. 한국의 소매업 매출이 둔화하고 원화 가치가 하락하며 주식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정 사장은 또 한번의 시련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거보다 훨씬 더 잘 준비돼 있다.

“나는 1998년 외환위기를 견뎌냈고 2003년 신용위기도 극복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위기도 겪게 되지만 겁먹을 필요 없다는 교훈을 배웠다. 소나기는 어차피 그치게 돼 있다.”

2007년 한국인은 아시아에서 카드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2008년 들어 카드 사용액은 줄었지만 정 사장이 발행하는 카드 수는 오히려 늘었다. 하지만 2009년에는 경기침체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닥칠 것으로 예측하고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가 늘고 신용불량 문제가 불거질 거라고 믿는 것이 타당하다.”

이 기사는 포브스와 포브스코리아가 공동으로 작성했습니다. 포브스 기사는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일부만 게재합니다. 포브스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에서 이 기사의 제목인 Card Check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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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Andrew Salmon 기자·사진 정치호 기자


“비 쏟아지기 전에 우산을 준비해라”
GE도 감탄한 현대카드의 위기관리

이번 경제 위기의 골이 얼마나 깊어질까. 모두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그러나 정태영 사장은 한결 여유롭다. 그는 “위기관리는 평소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위기가 닥친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는 “위기 다음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 사장은 카드 대란을 온몸으로 겪은 당사자다. 그는 카드 대란이 벌어진 2003년 1월 현대카드 대표로 취임해 2년 만에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대표 취임 직후 무리한 영업 활동에 제동을 걸고 부실 고객을 정리했다.

정 사장의 원칙 경영은 현대카드에 투자한 미국 GE의 위기관리 노하우와 접목되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현재 현대카드의 연체율은 0.52% 수준으로 카드 업계 평균치인 3.28%에 비해 훨씬 낮다. 국내 카드채 금리가 9%에 이른 반면 현대카드의 조달 금리는 7% 정도다.

남다른 위기관리 능력으로 현대카드를 이끌고 있는 정 사장을 찾았다. 마침 해외 출장 중이었던 정 사장은 e메일을 통해 답변을 보내왔다.

다음은 정 사장과 일문일답.

-현재 상황을 진단해 달라.

금융위기의 제2 라운드가 시작됐다. 미국의 각종 지표를 보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은 더욱 악화되고 있고, 자동차 할부금융과 신용카드 연체율도 올라가고 있다.

이제 한국에 가장 중요한 시장은 중국이다. 미국은 이미 ‘견적’이 나왔다. 부동산 투자 거품과 금융권의 부실 자산을 안고 있는 중국이 어떻게 선방하느냐에 따라 한국 시장의 미래가 좌우된다.

중국은 한국의 수출 의존도가 50%에 달하는 시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2009년 한국 경기는 2008년에 비해 하강할 것이다. 최선의 경우로 연착륙(soft landing)을 예상한다. 600조 원 이상의 가계부채를 지닌 국내 소비자금융 시장도 경색이 올 수밖에 없다.

-2003년과 같은 카드 대란이 올까.

신용경색의 징후가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2009년 상반기 중 나타날 수 있다. 다만 2003년과 달리 지금은 누구나 신용경색에 대비하고 있다.

리스크 관리 능력도 몇 배로 늘었고 과거 위기를 생생하게 경험한 조직도 남아 있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현대카드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경기의 부침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5년 후 우리의 위치이지 2009년 손익이 아니다.

우리는 마케팅을 비롯해 인력 관리, 인프라 투자 등 모든 결정을 장기적 관점에서 내릴 것이다. 대신 발급 기준의 조절, 심사 강화, 현금 서비스의 강약 조절은 짧은 호흡을 갖고 판단할 것이다.

-2003년처럼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할 것인가.

사람들은 2003년 당시 마케팅을 늘린 것을 역발상이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막판에 몰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배수진이었다. 다만 급박한 상황에서 막가는 마케팅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마케팅을 했다는 점은 지금도 자랑스럽다.
위기관리 노하우를 알려달라.

우리는 위기관리를 첫째, 평소에 했고 둘째, 교과서대로 했다. 경쟁사들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내 눈엔 차이가 크다. 선언과 실천의 차이라고나 할까. 자산부채관리를 글자 그대로 했다. 아마 우리뿐일 것이다. 1년짜리 상품이 팔리면 자금 조달을 1년으로 하고, 3년짜리가 팔리면 조달도 3년으로 했다. 그러니 자금 시장이 어려워지고 금리가 상승해도 우리는 영업에서 오는 어려움이 없다.

장기 차입 비중도 60%를 넘는다. 평소엔 장기차입으로 아까운 이자를 쓴다고 생각하지만 위기 때는 정반대다. 아직도 우리의 평균조달금리는 6%를 약간 상회할 뿐이다.

충당금도 2년 전부터 대폭 늘렸다. 국내 금융회사 중에서 충당금 비율을 가장 높게 책정했다. 충당금을 늘린 만큼 손익이 줄었으니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언젠간 비 오는 날의 우산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위기관리에 대해 직원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나.

중역들에게 리스크의 개념을 영업만큼이나 강조했다. 그래서 모기지 대출에 있어서 총부채상환비율(DTI) 개념을 국내에서 처음 도입했고 그것도 불안해 2차 보험을 들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생각지도 못하게 했다.

국내 카드 업계에서 현금 대출에 가장 소극적이라 자부한다. 힘들어도 마케팅을 통해서 신규 판매라는 기본에 충실했다. 영업과 리스크 부서가 충돌하면 항상 리스크 부서의 의견을 채택했다.

매달 우리와 GE의 주요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품별, 회사별, 자산별 등 각종 분석을 하는데 GE로부터도 리스크 관리가 세계적인 수준이고 오히려 너무 보수적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데 GE는 괜찮나.

아무리 시장 상황이 안 좋아도 규모나 내공을 고려할 때 GE가 그런 일을 겪진 않을 것이다.

- 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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