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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관세음보살, 둘이 아니더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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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올해는 소띠 해죠. 소처럼 꾸준하면 못살 사람이 없어요. 소는 죽어서도 보시를 하죠. 고기도, 가죽도 남김없이 베풀죠. 우리 사회가 그런 마음이면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요.”

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은 직접 쓴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란 글귀(下)를 보이며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울 게 없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6일 경남 하동 쌍계사. 지난해 10월 불교 조계종 전계대화상이 된 고산(76·쌍계사 조실) 스님이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전계대화상은 승려에게 수계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종정·원로회의 의장과 함께 종단에서 가장 권위있는 자리다. 고산 스님은 최근 회고록 『지리산의 무쇠소』(조계종출판사, 612쪽, 2만8000원)를 펴냈다. 대필이나 구술이 아니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편지지 1600장에 손으로 직접 원고를 썼다.

오후 7시, 지리산 밤하늘에 반달이 올랐다. 일주문을 넘자 법고가 울었다. ‘두리둥둥둥’ 북소리를 좇아 쌍계사 방장실로 갔다. 고산 스님이 먼 길 온 이들을 반긴다. 그는 1998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열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명심보감』을 읽다가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뚝뚝 흘렸죠. 그걸 보신 아버지께서 제 손을 잡고 부산 범어사로 갔어요.” 거기서 그는 조실인 동산 스님에게 당돌하게 물었다. “수행을 하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나요?” 동산 스님은 “꼭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 길로 출가했다. “‘관세음 기도’를 하다가 꿈에서 어머니를 몇 번 만났죠. 나중에 알았죠. 관세음보살과 어머니는 둘이 아니더군요.”

일제시대에는 절집 살림도 어려웠다. 범어사가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었는데도 쌀이 떨어져 신도들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양식을 구해야 했다. 72년에는 서울에서 조계사 주지를 맡았다. “그때만 해도 엉망이었죠. 법당 안에서 점도 보고, 물건도 팔고 그랬죠. 제가 주지로 가면서 그걸 다 없애버렸어요.” 이 때문에 신도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고산 스님은 80년대 중반 잠시 순천 송광사에서 머물던 때 일화를 들려줬다. “방장실에서 구산(九山·1909~83) 스님과 차를 마시고 있는데 ‘걸레’란 별호로 유명한 중광(1934~2002) 스님이 두 홉짜리 소주와 오징어 다리를 들고 방문을 확 열대요. 상 위에 소주와 오징어를 탁 내려놓더니 ‘이 소식을 이르세요!’ 하더군요.” 구산 스님은 “이 미친놈, 끌어내!”하고 꾸짖었다. 중광 스님은 “뭣도 모르는 것이 앉아서 방장이라고 하네!”라면서 나가버렸다.

고산 스님은 구산 스님께 “오늘은 스님께서 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구산 스님은 이유를 물었다. 고산 스님은 “‘이 소식을 이르세요!’ 하면 뻔한 것 아닙니까. ‘이 사람아, 거기 한 잔 붓게!’ 하면 되죠. 그러면 한 잔 부을 것 아닙니까. 그럼 ‘나는 많이 먹었으니 자네나 실컷 마시게’ 하면 제 손으로 들고 나갈 겁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오늘은 지신 거죠.” 그 말을 들은 구산 스님은 “맞네. 과연 오늘은 내가 졌네”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총무원장 시절에는 3000년마다 핀다는 ‘우담바라’ 꽃을 조사했다. “경기도 한 사찰에 우담바라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왔어요. 조사를 했더니 동불(銅佛)을 만들 때 생긴 작은 틈에다 외제 꽃씨를 넣었더라고요. 거기에 이끼를 넣고 물을 뿌려서 꽃을 피웠더군요. 실토를 받은 뒤에 신도들이 접근 못하게 했죠.”

이뿐만 아니다. 고산 스님은 출가 후 자신에게 구애의 편지를 보냈던 여성의 뺨을 때려서 돌려보낸 사연도 털어놨다. “나중에 그 여인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동반자살한 기사를 신문에서 우연히 봤어요.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들어 두 사람을 위해 49재를 지내줬어요.” 고산 스님은 “부처님이 설하신 ‘업과 인연’을 다시 생각케 했다”고 말했다.

하동(경남)=글·사진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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