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여성 해외주재원 시대 順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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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해 3월 하순 경남 삼천포항 근해.전날까지 잠잠하던 파도는 현대상선의 석탄운반선 현대스피리트호를 집어삼킬듯 달려들었다.배의 꽁무니가 공중에 노출되면서 갑자기 엔진이 멈춰버렸다.집채만한 파도에 배가 전복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여자를 태운 탓이야.” 나이 든 선원들의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한국 최초의 처녀 마도로스 조경주(趙璟珠.23)씨는 기관실을 정신없이 뛰며 계기를 조정해 위기를 모면했다.趙씨는 그이후 11개월간의 첫 항해를 무사히 끝냈고 현재 2차 항해중이다.

그녀는“마도로스가 된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몸져 눕기도,입학원서를 써 달라고 선생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기도 했다”며 여성에 대한 터부에 쓴 웃음을 지었다.

건설업계 최초의 여성 토목기사인 현대건설의 김선미(金宣美.28)씨는 93년 신입사원 시절 국내 지하철 공사 현장을 방문했을 때'여자가 들어오면 터널이 무너진다'는 인부들의 터부때문에 제재를 받기도 한 적이 있다.그녀는 이같은 벽을 넘어 토목기사가 됐고 지난해 2월부터는'해외의 벽'도 깨고 현재 브루나이 제루동 파크 마리나 항만공사 현장에 근무하고 있다.

중장비기사.주류영업사원등 국내 산업현장에는 여성들이 더러 배치되면서 여성에 대한 금기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하지만 해외주재는 90년대초까지 외무부.관광공사등 몇몇 정부기관에 극히 일부 여직원이 나가있을 정도로 벽이 두터웠다.그러나 최근 들어 이 벽을 허물어 나가는 여성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국제화.개방화 시대를 맞아 능력만 있다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해외근무를 기피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늘고 있고 회사도 여자를 굳이 주재원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는 추세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가 해운업계.지난해부터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여성해기사 8명을 탄생시킨데 이어 한진해운은 최근 장현희(張炫姬.25)씨를 싱가포르 주재원으로 발령해 업계 최초의 여성주재원 시대를 열었다.

張씨는“여자라고 해서 해외주재원 생활을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이번 발령을 계기로 여성에 대한 터부가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경우 93년 도쿄(東京)무역관에 처음으로 여자주재원이 나간 이래 김선화(金善花.31).정은주(丁恩珠.32)대리가 지난해와 올해 브뤼셀과 홍콩무역관으로 부임했다.기혼자인 두 사람은 가족없이 단신 부임한 맹렬 여성.무공은 앞으로도 여자주재원을 점차 늘려나간다는 계획.현대건설에는 金씨외에도 베트남 웨스트 레이커리 리조트현장에 근무하는 김종자(金宗子.40.설계담당)씨도 있다.金씨는 93년3월부터 싱가포르 선택시티 현장에 근무하다 95년 곧바로 베트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LG전자의 우정희(禹貞姬과 홍콩무역관으로 부임했다.기혼자인 두 사람은 가족없이 단신 부임한 맹렬 여성.무공은 앞으로도 여자주재원을 점차 늘려나간다는 계획.현대건설에는 金씨외에도 베트남 웨스트 레이커리 리조트현장에 근무하는 김종자(金宗子.40.설계담당)씨도 있다.金씨는 93년3월부터 싱가포르 선택시티 현장에 근무하다 95년 곧바로 베트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LG전자의 우정희(禹貞姬.26)씨는 95년 중국지역 기획관리실에 파견돼 근무하다 빠른 적응력과 손색없는 업무처리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정식주재원 발령을 받은 경우.禹씨는“알콜 농도 50~60도가 넘는 독한 중국술도 이젠 조금씩 마실줄 안다”며“여사원들도 어떤 일을 시켜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삼성그룹은 95년 3명의 여직원을 그룹중에서는 처음으로 해외에 주재시키는 발령을 냈다.그중 2명은 귀임하고 현재 1명만 런던에서 근무중이다.

외무부에는 92년까지 전체 외교관의 1%정도만 여자였으나 93년이후에는 3~4%(16명)로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는 현재 3명의 과장급 여직원이 나가있다.

그러나 해외주재원은 고유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방문객 접대와 같은 궂은 일도 많고 가족문제가 간단치 않은등 한계가 있다는 점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여성주재원이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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