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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강제 이주'는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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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장세정 경제부 기자

수도권의 공공기관 200개가 2009년부터 지방 각지로 이전한다는 보도가 나가자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강제이주'는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정부에 목을 매고 있는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들 입장에선 '지방으로 못 가는 이유'를 대라는 정부의 요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전 대상으로 거론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균형발전이란 명분에 밀려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의 직원은 "직장이 졸지에 지방으로 간다니 직원과 가족들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공공기관 이전작업은 지난해 6월 노무현 대통령이 "신행정수도 건설과 함께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정책으로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한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진행돼 왔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공공기관을 무더기로 지방에 내려보내는 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정부 내에서조차 대규모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얘기다.

수많은 정부 산하기관을 옮기는 데는 기관별 입지 조건이나 관련업무의 연계성 등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전에 따른 세심한 실행계획이 마련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지방으로 옮긴 60개 정부기관과 연구기관의 경우 상당수가 서울에 별도의 사무소를 설치했고, 직원들은 두 집 살림을 하는 부작용을 경험했다.

기관의 업무 속성상 중앙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해야 할 일이 많은 공공기관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질 경우 보이지 않는 비효율이 커질 우려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전되는 공공기관이 일부 지역에 집중되지 않도록 시.도별로 적절히 나누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정부의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참에 유력한 공공기관을 서로 자기 지역에 유치하겠다고 경쟁이 치열하다. 여기다 17대 국회가 개원한 후 국회의원들까지 유치경쟁에 가세하면 '나눠먹기식'으로 공공기관이 배정될 가능성도 있다.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논란이 일고 있는 신행정수도 건설 못지않은 국가적인 대역사(大役事)다. 지방균형발전이란 명분도 중요하지만 이전의 효과와 그에 따른 비용을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장세정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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