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재계새별>7. 미주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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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 출신으로 첫 전경련 회장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되고 싶다.”

미주그룹 박상희(朴相熙.46)회장은 비공개 석상에서 이같이 말한바 있다.그는 또“나는 사장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표상이 되겠다”는 말도 했다.

그는 실제 28세에 창업해 19년만에 연매출 4천억원(97년 목표)을 바라보는 중견그룹을 만들었고,95년 3월 경제 4단체중 하나인 기협중앙회 회장이 됐다.그러다 보니 朴회장은 그같은 꿈을 반쯤 이룬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

다.역대 최연소 기협중앙 회장에 오르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받게 됐고 그의 고속성장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낳기도 했다.

역대 최연소 企協회장

朴회장의 출발은 평범했다.경북달성에서 빈농집안의 3남1녀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이 쌀밥을 먹는 것을 보고“이 다음에 선생님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朴회장은 그러나 대구상고를 졸업한후 은행원으로 취직해 기업대출 업무를 한 것이 인연이 돼 선생님이 되겠다던 생각을 버리고 사업가의 길로 방향을 틀었다.거래업체 사장으로부터 부도난 자신의 철강 도매업체를 인수해 사업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를 받고 7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미련없이 청산한 것이다.78년의 일이었다.당시 지점장이 “은행원이 사업을 하면 십중팔구 망한다”고 만류했지만“뭔가를 이루기 위해선 은행원보다 사업가가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도업체인 대진철강은 인수당시 연간 매출액이 15억원에 불과했으나 인수 4년만에 1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흑자회사로 변모한다.당시 세금계산서 발급을 꺼리던 다른 철강업체와 달리 세금계산서를 제대로 끊어주고 과감한 신용거래를 한 것

이 주효했다.朴회장은“거래업체의 눈빛만 봐도 그 회사의 재무상태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잣대는 거래업체 사장의 옷차림,말하는 모양과

태도,사고방식이다.한마디로'육감(六感)'경영인 셈이다.그가 지금도

결재서류에 사인할때 반드시 실무자를 부르는 배경도 거기에 있다.미주는

부장급 실무자들이 임원들과 함께 참석하는 확

대간부회의가 최고 의사결정기구다.이 회의는 한달에 한번이상 열린다.본사

부장들은 전원 참석하며 지방사업장에 근무하는 부장들도 사안에 따라 이

회의에 참석한다.

철강도매업으로 기반을 닦은 朴회장은 제조업으로 눈을 돌렸다.80년

미주실업을 만들어 건축기자재 수입업에 나서며 건축현장의 목재 거푸집

대신 철강재 거푸집(스틸폼)을 만들면 사업이 되겠다고 판단했다.8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건설경기 붐을 타고 인건비가 덜 들어가는 철강재 거푸집은 날개돋친듯

팔렸다.자신감을 얻은 朴회장은'철강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92년 미주실업에 철강재를 공급해주던 동방제강(지금의 미주제강)을 인수해

국내 독점 엘리베이터가드레

일 업체로 키웠다.이어 첫 사업체인 대진철강의 이름을 미주철강으로 바꿔

일반구조용 강관사업에까지 뛰어들며 본격적인 철강업체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이같이 건축물에 들어가는 철강재 관련사업을 두루 하며'아파트도 다른

건설업체보다 싸게 지을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자 건설업으로 사업을

다각화한다.89년 미주실업에서 아파트 건설에 나선데 이어 90년

미주주택(대구)과 미주종합건설

을 잇따라 설립했다.93년엔 대구의 동진금속(지금의 미주금속)을 사들여

자동차부품사업에도 나섰다.

올매출 4천억원 목표

특히 96년7월에는 포철계열사인 포스틸이 갖고 있던 포항의

스테인리스공장과 순천 스파이럴강관공장을 공개입찰을 통해 3백71억원에

인수했다.미주철강은 이를 계기로 단숨에 국내 5대 강관메이커로 떠오르며

재계의 주목을 끌었다.

미주는 이같은 사업확장을 통해 계열사를 8개(종업원수 1천5백여명)로 늘려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매출액면에서도 지난해 2천6백억원에서 올해

4천억원을 목표로 하는등 급성장하고 있다.

미주그룹의 이같은 사업확장에는 朴회장 특유의 친화력과 뚝심이 밑바탕이

됐다.그는'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며 사람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그의

대인관계의 폭은 대그룹회장에 버금갈 정도로 폭이 넓다고 한다.하지만

朴회장은 자신이 알

고 지내는 인맥을 이용해 사업과 관련한 특혜를 받는 일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朴회장은 저녁 약속을 하루에 두번 하는 경우가 많다.밤11시의 심야미팅도

적지않게 한다.중소기협중앙회장을 맡은 뒤 그의 교류폭은 한층 넓어져

약속시간을 30분단위로 쪼개 쓰기도 한다.

해외진출 강화가 과제

朴회장의 일과는 대체로 미주그룹의 경영과 기협중앙회 업무를 보는 것

두가지로 나뉜다.최근엔 심각한 부도사태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는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기협중앙회 업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경영관리의 공백을 메

우기 위해 지방공장과 아파트 공사현장등은 주말을 이용해 사업추진

현황등을 점검한다.朴회장은 특히 재무제표를 읽어내는 일이나 투자계획서

또는 회계장부의 허점을 잘 집어낸다.그룹에서는 이에대해“은행원시절

경험을 기업경영에 충분히 발휘하

는 것같다”고 말한다.

朴회장의 그룹경영은 사람관리에서 출발한다.그룹내 8개 계열사중 6개사의

대표이사직을 朴회장이 맡고 있다.따라서 전문경영인들의 운신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다.하지만 한번 믿은 사람에게는 상당한 권한과 자율

결정권을 준다.

그룹기조실장을 맡고 있는 김우소(金宇昭.54)부사장은 회장의 분신으로

통한다.그는 朴회장의 개인 인감은 물론 당좌.법인 인감까지 맡아 그룹의

안살림을 챙기고 있다.金부사장은 동부제강 기획담당이사를 거쳐

중소철강업체인 동성철강의 대

표를 맡다 94년 기조실을 만들때 영입됐다.그룹내 기획.회계통으로

불린다.朴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계열사의 경영에도 폭넓게 관여한다.

포스틸에서 영업과 생산본부장을 지낸 미주철강

박부홍(朴富弘.53)대표이사는 지난해 9월 영입돼 미주철강의 강관사업과

그룹의 철강사업을 총괄한다.최근엔 미주가 인수한 스파이럴과 스테인리스

강관사업을 궤도에 올려놓는 일에 전념하고 있

다.

그룹의 자금조달업무는 김옥배(金玉培.44)경리담당이사의 손에서 상당부분

이뤄진다.그는 웬만큼 큰돈의 움직임도 朴회장에게 사후보고할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다.

미주그룹은 내년에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미주는 창업이래 외형은 많이 커졌지만 아직 내수시장에 많이

의존한다.엘리베이터 가드레일을 연간 1천만달러정도 수출하는 것이 유일한

해외사업이다.

이에따라 미주는 경쟁력있는 강관사업의 동남아진출.해외건설등을 통한

해외부문의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여기에 정보통신업체의 인수.합병등을

통해 2000년까지 연매출 1조원의 그룹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고윤희

기자〉 (다음은 일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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