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말하는 일자리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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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최현철 기자

지방자치단체 기민하게 움직여야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일자리 만들기가 제대로 되려면 지방자치단체가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중앙정부가 확실한 대책을 세우고 돈을 풀어도 지자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때 나랏돈을 풀어 벌인 사업이 제대로 되는지를 챙기기 위해 별도 기구를 두기까지 했다. 성 교수는 정부의 역할도 지원자에 머무르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직접 고용 창출에 나서기보다는 기업이 기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만든 공공근로와 같은 일자리는 임시방편 성격이 강해 근본적인 일자리 대책으로 한계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자리 DB’ 부터 제대로 만들어라

  실업이 심각하다지만 한편에선 일손 부족을 호소한다. 일자리와 구직자에 대한 종합 정보가 있으면 이런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있다. 노동부는 ‘빈 일자리’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DB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관리다. 한국노동연구원 금재호 선임연구위원은 “일자리 하나하나에 대해 언제 채워졌는지, 누가 취업했는지, 약속한 처우를 지키고 있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일자리를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것인지도 신경 써야 한다. 금 위원은 “사람들이 꺼리는 일자리의 처우를 개선해 구조적인 미스매치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연장 서둘러서 추진하라

서강대 남성일 경제대학원장은 “비정규직을 2년 이상 고용하지 못하도록 한 제한만 풀어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같은 때 비정규직이라도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으면 다행이다. 기업 입장에선 계약직으로 채용했다가 사정이 좋아지면 정규직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행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2년이 지나면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게 부담스러운 기업이 2년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남 원장은 “이 때문에 40만 개의 일자리가 줄었다”며 “2년 사용 제한을 3~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기업부터 먼저 일자리를 나눠라

공기업 사정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솔선해 일자리를 나눌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한성대 경제학과 박영범 교수는 “호주처럼 공기업의 임금총량 관리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해진 인건비 총액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더 뽑더라도 정부가 간여하지 않는 제도다. 지난달 전체 직원 4000명의 69%에 해당하는 2757명의 계약직을 새로 뽑은 농촌진흥청이 좋은 사례다. 농진청은 산하 연구소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 170억원의 재원을 마련했다. 수출입은행 노사는 직원 임금을 3년 연속 동결하고, 임원 기본연봉은 40% 깎기로 합의했다. 은행 측은 아낀 돈을 신입 행원과 청년인턴 채용에 쓸 방침이다.

경제팀 수장이 매달 일자리 점검을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실업대책을 만들었던 오종남 서울대 과학기술혁신과정 교수(전 통계청장)는 “경제팀의 수장이 직접 책임지고 대책을 만들고 매달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올 초부터 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직장을 잃고 거리를 헤맬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경제팀 수장이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 오 교수는 “경제가 성장하면 저절로 일자리가 늘어나던 시절은 지났다”며 “일자리 만들기를 정부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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