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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출 현장일기] 가수 테이 편 촬영때 달려드는 전교생 '아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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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 정윤정 MBC ‘러브 하우스’ 조연출

소설 '빨강머리 앤'에서 앤은 "상상력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상상 속의 집을 현실로 만드는 요술 같은 프로그램 '러브 하우스'.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돕기도 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겠다는 뜻도 있다. 그렇다고 촬영이 상상 만으로 이뤄지는 건 절대 아니다.

최근 가수 테이 편의 촬영이 있었다. 최고의 인기 가수가 나오는데다 날씨 또한 기분 만큼이나 화창했다. 장소는 춘천.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촬영 장소인 중학교에 도착한 순간 이런 저런 상상은 날카로운 비명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운동장에는 거의 전교생이 테이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수백명의 학생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신발을 신고 나를 향해 달려오는 데, 오싹했다. 그 짧은 시간 머릿속에는 압사.비명횡사.뉴스데스크 등의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소녀들이 남긴 모래먼지에 콜록댈 때쯤 촬영은 상상이 아닌 실제상황이 돼 있었다.

두번째 촬영 장소는 사연의 주인공 집. 여름 촬영의 가장 큰 고역은 '향기'(?)다. 여러 냄새가 평소보다 짙어지기 때문이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않는, 서너평짜리 방에서 인터뷰를 하다보면 18명의 체취에, 180개의 발가락에서 피어나는 발냄새까지 섞여 괴롭기 그지없다. 코가 지치다 못해 머리까지 몽롱해진다.

그런데 씩씩하던 주인공 자매가 인터뷰 도중 눈물을 펑펑 흘리니 내 마음도 멍해진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인터뷰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사랑은 향기를 남긴다고 한다. 우리의 '러브 하우스'도 상상을 뛰어넘는 향기로운 프로그램이 되고 싶다.

정윤정 MBC '러브 하우스' 조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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