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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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기달과 옥은 아직도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가 죽지 않고 서 있는 큼직한 철제 대문 집으로 들어섰다.감나무 가지에는 덜 익은 푸른 감들이 달려 있고 그 밑에는 감또개들이 떨어져 있기도 하였다.감나무 주위로 이전에는 단아한 정원으로 가꾸어졌을 마당이 온통 풀들로 어지럽게 덮여 있었다.

“귀신이 살고 있지는 않겠지?”

옥이 기달의 허리를 팔로 휘감으며 짐짓 무서운 척 하였다.

“귀신이 살고 있으면 어때? 기달이가 여기 있는데.”

기달이 거드름을 피우며 유리창이 왕창 깨어져 나간 현관문을 발로 걷어찼다.

“귀신아,나오라.나오란 말이야! 달걀귀신도 좋고,홍당무귀신도 좋고,머리 푼 여자귀신도 좋고,어떤 귀신이라도 좋으니 썩 나오란 말이다!”

기달이 쓰레기와 먼지로 덮인 거실로 들어서며 고함을 질러댔다.

“그렇게 소리 지르지마.없는 귀신도 나오겠다.”

옥이 정말 무서운 듯 몸을 움츠리며 기달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알았어.그러니까 귀신 이야기는 하지도마.이거 어디부터 치우지? 안방으로 한번 들어가볼까?”

기달이 옥의 어깨를 감싸고 안방 문을 또 발로 밀어붙였다.

찌이이익.

돌쩌귀 돌아가는 소리가 정말 귀신 신음소리처럼 들렸다.안방도 거실과 마찬가지로 허섭스레기와 먼지 투성이였는데,겉으로는 제법 미끈하게 보이는 자개농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그 자개농은 이전부터 그랬는지 문짝들이 맞지 않아 반쯤 열린 상

태로 있었다.이전 주인이 이삿짐을 옮기면서 자개농은 폐기처분했음에 틀림없었다.

“농 속에 요와 이불이 남아있는 것같애.”

옥이 자개농으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어보았다.아닌게 아니라 잇이 뜯어지고 벗겨진 요와 이불들이 두어 채 되는대로 개켜져 있었다.

“이 요와 이불을 사용해도 될 것같애.침구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더럽고 그냥 깔개로 사용하지 뭐.”

옥이 요와 이불 모서리를 손으로 들쳐보았다.

“우선 이 방바닥부터 대강 치우고 앉든지 눕든지 해야지.”

기달이 발로 신문지 뭉치와 먼지들을 밀어내며 쓰레받기나 빗자루 같은 것이 없나 둘러보았다.합판 쪼가리가 눈에 띄자 기달이 그것을 집어들어 쓰레기와 먼지들을 모아 한구석으로 밀어내었다.

“걸레같은 것이 있으며 한번 바닥을 훔쳐내면 좋을 텐데.”

“수도가 나와야 말이지.저쪽 변두리에 남아있는 몇 집 빼고는 상수도관을 다 막아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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