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는 언제 올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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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26면

지난해 『시크릿』이란 책이 2년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론다 번이란 호주의 전직 TV 프로듀서가 쓴 이 책은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란 부제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핵심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를 믿어라,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기가 꾸준한 걸 보면 불황은 불황인 모양이다. 불확실성이 세상에 짙게 깔릴수록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신감을 찾을 필요도 커지게 된다.

기축년 증시의 첫 모습도 이 책을 닮아 있다. 소의 해가 시작돼서일까. 지난 주말 한국과 미국 증시가 나란히 3%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다. 양쪽 모두 특별한 호재는 없었다. 길고 길었던 2008년이 끝났다는 해방감, 2009년은 뭔가 다르리라는 기대감에 사자 주문이 잇따랐다. 곰(약세장)이 빨리 물러가고 황소(강세장)가 성큼성큼 달려오길 바라는 열망은 만국 공통이다.

하지만 근거 없는 열망은 쉽사리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새해 첫날의 강세장 뒤에 가려진 현실은 그다지 밝지 않다. 미국의 12월 제조업 경기지수는 1980년 이후 30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럽도 조사를 시작한 이래 10년 만에 최악이었다. 전문가들이 한참 눈높이를 낮춰 놨던 예상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도 다를 바 없다. 경기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수출이 12월 17.4%나 줄었다.

2009년 증시의 향방은 결국 금융과 실물이 서로를 축소시키는 악순환이 언제 끝나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 실적이 개선되고 가계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경기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 각국 정부가 열심히 돈을 뿌려 대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한창 진행 중인 기업·금융·가계의 부채축소(디레버리징) 과정이 일단락되고, 주택 등 자산가격이 회복 국면에 들어서야 본격적 상승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때까진 주가가 싸 보인다고 해서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구조조정의 시대엔 기업가치를 대차대조표보다 현금흐름표에서 찾아야 한다. 살아남을 기업을 구분하기도 어렵고, 설혹 찾아낸다고 해도 당장 실적이 개선되리라 기대하기도 힘들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증시의 흐름을 살펴보면 부실의 후유증을 완전히 걷어내고 코스피지수가 1000을 넘긴 건 신용카드 위기가 해소된 2004년 이후였다. 이때까지 증시는 ‘빅딜’ ‘대우 사태’ ‘현대 사태’ 등의 위기를 거의 매년 겪어야 했다.

‘쇠고집’이란 말이 있다. 주인이 아무리 잡아 끌어도 소가 원치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증시도 이런 점에선 소에 비유할 수 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시장에서 1년은 긴 시간이다. 소가 스스로 움직이려 할 때를 느긋하게 기다려 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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