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조업단축 긴급점검 - 배경과 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앞으로 삼아남을 회사가 없을 것이다.”아시아자동차에 화물차 적재함을 공급하는 ㈜서울차체의 한 간부는 현재 자동차부품업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렇게 요약했다.이 회사는 최근 아시아측의 조업단축 때문에 잔

업을 4시간 줄였으며 평소 70억원에 달하던 월 매출액이 40% 가량 감소했다.최근 자동차 내수의 급격한 감소로 완성차업체들의 조업단축이 확산되면서 중소 부품업체들이 연쇄도산 위기를 맞는등 자동차산업 전반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완성차업체의 조업단축→부품업체의 생산.고용 축소→재하청업체의 부도로 이어지는 연쇄위기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업계 일각에서는'4월말 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업체 피해확산=현대자동차에 시트와 내장재를 납품하는 한일이화는

현대의 조업단축 때문에 매출액이 월 3억8천만원대에서 6천만원 정도

감소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모기업이 기침하면 협력사는 독감 들게 된다”며“매일

대책회의를 열고 있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특히 자동차

중소부품업체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번 노동법파업으로 9천억원에 달하는

생산차질과 1억달러의 수출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조업단축은 엎친데 덮친 격이다.

상황이 심각해짐에 따라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은 내수가 살아나도록

각종 제도를 개선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지난 14일 관련 정부기관에

제출했다.

조합은 건의서에서 “완성차 생산이 연간 10만대 감소하면 부품업계는

납품액이 5천28억원 줄고 가동률도 3.6% 떨어져 결국 1만3천8백80명의

인력을 감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성차업체 진퇴양난=조업단축이라는 극약처방을 쓴 완성차업체들의

애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막대한 돈이 들어간 설비를 그냥 놀려 두면

고정비용으로 나가는 부담이 적지 않다.

지금 추세로 재고가 쌓여 간다면 자동차메이커들은 잘 안 팔리는 차종의

생산은 아예 중단해야 할지 모른다.또 일부 차종은 무이자할부판매에

나서는등'나만이라도 살아남기'식의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조업단축 때문에

당장 급여가 깎였다고

느끼는 근로자들의 불안도 크다.

현대자동차 노조간부는“이번 사태는 빨라도 내년 봄,늦으면 그 이후까지

지속될 것”이라면서도“그러나 일부에서 말하는 임금동결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조업단축이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다.현대자동차의 경우 이번

조업단축으로 하루 1천여대씩의 생산과 하루 4시간씩의 시간외근로수당

부담이 줄어 재고소진.경비절감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어려워졌나=현재의 어려움은 불황 탓도 있지만 대책 없는 증설이

초래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지난해말 국내업체들의 생산능력은

3백50만대.생산실적은 2백81만대로 80%선의 가동률을 유지했다.

올해는 생산능력이 4백만대로 지난해와 같은 가동률로 간다면 3백20만대가

생산된다.그러나 업계가 달성할 수 있는 국내외 최대 판매량은 2백90만대

남짓으로 분석된다.따라서 최소 30만대의 공급과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DRI는 최근'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한국자동차업체의 새로운 전략모색'이라는 보고서에서“구조조정의

초기단계에 진입한 한국자동차업계는 공급과잉과 설비확대라는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더욱 공격적인 투자전략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국내업체들의 생각은 다르다.정부정책이 환경보호와 교통난

해소등을 위해 수요를 억제하는 쪽으로 흐르다 보니 내수가 위축되고 있다는

주장이다.거기다 물꼬를 터 줄 수 있는 수출도 선진국업체들의 견제로

호락호락하지 않다.이미 미

국.유럽업체들은 한국시장의 장벽이 높다고 비난하면서 “수출하는 만큼

문을 열라”는 주문을 계속하고 있다.

◇대책은 없는지=문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다.김만유(金滿猶)현대자동차이사는“요즘은 한 마디로 차 사는

분위기가 아니다”며“금년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으며 빨라도 앞으로

1년후에나 시장이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정현(魯正鉉)한양대교수는“수출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업계가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원가절감.기술혁신을 통한

구조조정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의준.박영수.유권하 기자〉

<사진설명>

조업단축으로 한산해진 한 회사의 승용차 생산라인.하루 작업시간 8시간외의

잔업을 없애는 방법으로 조업단축을 실시하고 있으나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중앙포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