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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now] ‘골초천국’ 건강해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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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해 12월 27일 오후 파리 샹젤리제 거리. 겨울에도 큰 추위가 없는 파리지만 이날은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쌀쌀했다. 그러나 샹젤리제 카페들의 야외 탁자에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실내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피자 레스토랑의 야외 좌석에서 코트를 입은 채 식사하던 테레즈 로랑(33)은 “한겨울에도 밖에서 식사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실은 나도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식사하기는 싫다”고 말했다. ‘골초’가 많기로 소문난 프랑스가 카페·음식점·술집 등에서 전면 금연을 실시한 지 1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애연가들과 음식점 업주들이 극렬히 반대했지만 요즘은 카페에서 담배 피울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조차 듣기가 쉽지 않다.

‘금연자 권리 찾기 모임’ 측은 최근 AP와 인터뷰에서 “워낙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아서 금연 조치가 잘 지켜질지 의문이었지만 1년 만에 완벽하게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또 “보통 한 나라에서 금연 조치가 3개월 이상 성공하면 실패 확률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2006년 공공장소 금연조치 시행 당시 음식점과 카페 업주 등의 반발로 이들 업소에서의 실시가 11개월 미뤄졌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했다. 지난해 초까지도 담배소매상협회·요식업협회 등이 가두 시위를 벌이면서 정부 시책 철회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미 프랑스는 1991년 금연법을 통과시키고 공공장소 금연을 추진했지만 애연가들의 반대로 흐지부지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금연 전담 경찰이 등장한 이유도 있지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카페 안에서 흡연하다 적발되는 사례는 지방의 일부 ‘반항업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정부의 금연 조치에 순순히 따라준 애연가들 덕분에 여러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우선 실내 공기가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실내 공기 오염도 관찰 연구소에 따르면 2007년 4분기에 음식점 등 공공장소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쾌적한 공기 기준에 못 미치는 곳이 55%나 됐다.

그러나 지난해 1분기 조사에선 10% 미만으로 줄었다. 심장병 환자의 발작 증세도 크게 감소했다.

프랑스 국립위생연구소는 전국 주요 병원의 통계를 인용해 “금연 조치 시행 후 2개월 만에 심장 질환으로 인한 발작 환자가 15%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0월 담배 판매량(450억 개비)도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8% 감소했다. 애연가들의 협조로 프랑스가 ‘흡연의 나라’에서 ‘건강의 나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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