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장애인 30쌍 뒤늦은 합동결혼식 … "신혼같은 기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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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합동 결혼식을 올린 장애인 30쌍이 수원시 경기도청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6일 낮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앞. 최영석(41.포천시 마명리)씨와 전정아(32.여)씨는 연방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서로 바라봤다. 그리고 왼 주먹을 꽉 쥔 채 그 위로 쭉 펴진 오른손을 돌려 댔다. 수화로 '사랑해요'라는 뜻이다.

다섯 살 때 주사를 잘못 맞아 청력을 잃었다는 최씨는 올 1월 친구의 소개로 전씨를 만났다. 지체 장애인인 전씨는 청각장애인인 부모와의 의사 소통을 위해 기본적인 수화를 익혀 최씨와 수화로 대화할 수 있었다.

이들은 수화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게 됐고 서로 천생연분임을 확인했다. 서너 번의 데이트 뒤에 둘은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프러포즈를 두 달 가까이 망설였다. 어려운 경제 형편 때문에 번듯하게 결혼식을 올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그러던 중 4월에 장애인단체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합동결혼식을 열어준다는 얘기가 들리기에 곧바로 수소문해서 신청했죠."

최씨는 지난달 말 합동결혼식을 신청하자마자 전씨에게 달려가 미래를 영원히 함께 하자는 뜻에서 그녀의 왼손에 작은 반지를 끼워줬다.

이날 오후 경기도 수원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는 최씨와 처지가 비슷한 장애인 30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가족과 손님 등 40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동안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혼인신고만 하고 살아온 경기도 내 장애인 부부와 새로 신혼살림을 차리는 남녀가 그 주인공이었다.

20년 넘게 결혼 생활을 해 왔지만 지체 장애와 생활 형편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정춘호(46.안산시 고잔동)씨와 박복현(43.여)씨 부부는 "장성한 아들이 있지만 결혼식을 올리면서 부부의 정을 새롭게 확인해 너무 기쁘다"며 젊은 신혼부부 못지 않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경기도 신체장애인복지회 최봉선 사무총장은 "결혼식이야말로 장애인에게 활기찬 삶을 가져다주는 가장 아름다운 행사일 것"라고 말했다.

주례를 맡은 경기도 정창섭 행정부지사는 "오늘 식을 올린 30쌍은 장애의 불편함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생활해온 우리의 장한 이웃"이라며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밝고 희망찬 가정을 꾸려나갈 것을 굳게 믿는다"고 이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이들은 결혼식을 마치고 경기도청을 찾아 기념촬영을 했다. 30쌍 부부의 얼굴에는 내내 웃음이 가시지를 않았다.

수원=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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