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새해 특집] 창업이 희망이다 … ‘아이디어의 뿔’로 위기 뚫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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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parkys@joongang.co.kr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말했다. “동양에서는 ‘Crisis’를 ‘위기(危機)’라고 쓴답니다.” 이어진 부연 설명. “위(危)는 위험을, 기(機)는 기회를 뜻한다네요. 위기가 오면 위험을 예측하는 동시에 기회를 살펴야 한다, 뭐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케네디는 동양인의 사고방식이 서양인보다 사뭇 유연하다고 본 모양이다. 그의 말마따나 위기는 혼자 오지 않는다. 기회를 동반한다. 불황이란 얼굴 뒤에도 표정이 있다. “이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며 각오를 다지는 희망이다. 희망, 그것은 불황보다 강하다.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한 안철수씨. 우리나라 벤처 1세대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KAIST의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르치는 과목은 ‘기업가적 사고방식’. 43명의 KAIST 학부생을 상대로 비즈니스 소양을 일깨워주는 과정이다. 첫 학기 강의를 마무리한 지난주, 그는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들려줬다.

“3학년생이 상담을 해왔어요. 의사가 되려고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지요.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바이오 기업을 창업하고 싶다고요. 의사보단 사업가로서 병든 사람을 더 많이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군요.”

그 학생의 고민은 25년 전, 안철수씨가 했던 그것과 비슷했다. 병든 이를 고치는 의사가 되느냐, 컴퓨터를 고치는 ‘컴닥터’가 되느냐 두 갈래 길에서 방황하다 결국 창업의 길을 택했던 그처럼. 상담하러 온 학생은 20여 년 뒤 어떤 모습일까.

◆아이디어만 있으면

취업은 더 어려워질 것 같다. 한국은행은 올해 실업률을 3.4%로 본다. 청년실업률은 이의 두 배쯤 된다. 마냥 기업 문을 노크하라고 말만 되뇔 수 없는 상황이다. “불황이지만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창업가의 길을 가보라”는 안 교수의 조언처럼 창업은 꽉 막힌 진로를 트는 방법 중 하나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전문성을 갖추면 대박은 아니라도 의젓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다.

쇼핑몰 중에 ‘극동건재’(www.kdong.co.kr)라는 온라인 건축자재 전문 사이트가 있다. 운영자인 이호준(26)씨는 그리스도대학교 경영정보학과 4년 재학생이다. 그는 “취업난이 워낙 심각해 학교 교수가 창업을 적극 권했다”고 했다. 건축자재 소매업을 하는 아버지도 이 방면의 온라인 사업을 해보겠다는 아들을 적극 밀었다. 지금 그는 아버지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린다. “젊을 때는 실패를 할 수 있는 시기다. 실패를 겁내지 말고 자신의 장기를 찾아서 창업해 보라”고 이씨는 조언했다.

올해는 ‘1인 기업’ 창업이 붐을 이룰 전망이다. 정부도 ‘1인 창조기업’ 육성에 힘쓰겠다고 공언했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불황일수록 자녀교육·인적자원관리·마케팅·고객관리·기업업무 아웃소싱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1인 사업가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를 들어 마감재 시공업체인 ‘솔리스톤’(www.soliston.kr)은 영업과 상담만 해주고 시공은 일용직 근로자에게 맡긴다.

◆혼자 잘 할 수만은 없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2000년에 우리나라의 창업 열기를 이렇게 칭송했다. “한국은 창업가정신이 가장 높은 나라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벤처와 소자본 창업의 열풍이 충만할 때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열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영세 자영업자의 창업 실패율은 80%대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다. 그래서 ‘무작정 창업’을 부추길 수는 없다. 그러잖아도 지난 10년간 음식점 등 생계형 창업의 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는 “창업 성공률을 높이려면 사업체 설립단계의 지원 못지않게 창업 후 운영노하우와 경영능력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1960년대 말부터 창업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500여 대학에 창업가정신 과목이 있다. 싱가포르는 84년부터 영재교육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들이 혁신적인 신제품 아이디어를 내 특허를 따고 상품화하도록 장려한다. “기업가정신 교육 없이 유럽연합(EU)의 미래는 없다”는 2000년 EU의 ‘리스본 어젠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소기업청이 2002년부터 ‘비즈쿨’이라는 대학창업동아리 지원제도를 시행해 왔다. 2004년부터 중앙대 등에서 몇몇 창업대학원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초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중앙대 창업대학원 부원장 김진수(경영학) 교수는 “창업가정신은 개인이나 기업에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정부·교육기관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의 경우 직원 개개인의 창의성을 보장하는 사내 창업 인프라를 조성하고, 정부는 ‘30만 개 일자리 창출’ 같은 수치목표 일변도에서 벗어나 젊은이들이 창업 후 지속적으로 자생할 만한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학교는 회계·세무 교육은 물론 위기관리 능력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창업은 사업 성공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의 도널드 F 쿠라코 교수는 “21세기의 창업가 혁명은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요컨대 아이디어 창업은 ‘희망의 씨앗이자 혁명’이다.

정선구 유통·서비스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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