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돈 안드는 선거 정착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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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9일 개막된 제97차 국제의회연맹(IPU)정기총회는 전세계 1백45개국 1천3백56명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개최돼 14일 그 막을 내렸다.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때 우리 정치권에서는'한보사태'와 관련해 정치인 수사라는

대란을 맞게 되었으니 우리 의회 사상 최대의 권위실추를 맞은 셈이다.

오늘날 의회민주주의와 관련해 도처에서 위기론이 봇물 터지듯 나오게 되었다.'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는 그의 최근 저서 '새로운 정치문화의 창조'에서 현재 각국 의회제도는 제2의 물결의 잔재로서 현대의 폭주하는 제반정치수요

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도 무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 저서에서 미래의 정치체제는 통신기술의 괄목할 만한 발달에 따라 모든 정치적 결정이 시민의 직접참여에 의해 결정되는 전자민주주의(Cyber Democracy)로 바뀐다고 지적했다.그러나 이러한 토플러식 위기론과는 전혀

다른 의회민주주의 위기가 바로 우리나라 의회의 위기다.

이번'한보사태'로 인해 우리 국회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지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깊어질대로 깊어져 의회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다.여기에는 정치와 돈의 밀접한 관계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의회제에서는 선거를 통해 의원이 선출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엄청난 천문학적 돈이 필요하다.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더 돈을 많이 쓰느냐에 따라 당락이 판가름난다.이러한 비이성적 풍토가 바로 한국 의회민주정치 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 안드는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여건조성이 필수적이다.이 여건조성에는 국민 모두가 선거와 돈의 무관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다시 말해 국민의식 개혁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국회의원이 되고자 하는 정치인들도 의식을 개혁해야 한다.민주정치의 정치인은'군림하는 자'가 아닌'봉사하는 자'라는 인식을 확실히 해야 한다.정치는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

다.

이승만(李承晩)정권에 대항하는 56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야당 대통령후보였던 신익희(申翼熙)씨는 의원은'종.머슴'이라고 말했다.바로 이러한 의식을 가진 자만이 국민의 대표가 돼야 한다.돈을 써서 종이 되고 머슴이 될 바보가 어디 있겠

느냐는 풍조가 팽배해야 한다.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대비한 미국 의회의 모순에 대한 질타는 차치하고 아직 제2의 물결시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답답할 따름이다.

기우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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