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금이 政界개혁 適期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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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정치가 휘청거리고 있다.대의민주제가 벼랑끝에 선 듯한 느낌이다.민의가 아닌 돈으로 하던 정치에 한계가 오고 있는 것이다.올들어 내내 정치인은 물론,국민까지도 오염된 정치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이제 깨끗한 물로 몸과 마음을 씻고 과거를 훌훌 털어 낼 때가 됐다.

'韓寶가 기여' 逆說도

한보사건은 한국정치의 전기를 마련하는 큰 계기가 될 듯해 어쩌면 다행스럽다는 역설(逆說)조차 성립된다.아마도'한보'가 없었으면 한국정치는 옛모습 그대로 돈과 연줄에 얽혀 계속 행세했을 것이다.그러나 국회청문회가 열리고 거물정치인들

이 검찰청사에 출두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정치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정치인이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초선.다선 할것 없이 기억상실증에다 말을 바꾸는 간지(奸智)까지 곁들이고,또 이렇게 부도덕하고 신의와 거리가 멀 수는 없다.앞으로 이들이 국가와 민족을 들먹여도 이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러나 지금 한 두 개인을 말하고 싶지 않다.제도를 말하고 관행을 말하며 개인을 거기에 묻자.

이 나라의 정치와 돈의 야합구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 청문회가 검찰수사와 상승작용을 하면서 그래도 어느 정도의 몫은 해냈다.청문회의 한계가 뚜렷한 것은 그게 이 나라의 의회수준이기 때문에

그렇다.대통령중심제의 국가지만 미국은 의회가 전통적으로 강하다.국정조사와 청문회라는 제도를 살리기에 충분한 의회내의 네 기구(입법조사.예산.회계.기술)가 버티고 있고, 검찰수사권에 버금가는 조사관의 능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더욱이

증인들에게 조사에 협조하는 대가(기소및 형량조절)까지 있어 우리네식 의리가 좀 부족한 미국에서는 성공할 수 있는 제도다.

우리는 이에 못하지만 대가성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확인되기 시작한 것은 정치개혁의 신호탄이 오른 것이다.대선주자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하나 둘 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큰 변화에는 항상 제단이

꾸며지게 마련이다.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국정치는 회생한다.“다 똑같은데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죽고…”하며 따지지 말자.그냥 물 흐르는 곳으로 가자.그곳은 정당을

감량(減量)경영하는 데고,선거공영제를 하는 데며,그 때는 올 12월이다.

정치판을 새로 짜려면 실은 헌법도 고치고 대통령도 다시 뽑고 해야

한다.그러나 헌정중단같은 극한상황까지 가지 말자는 의견을 억지 존중해

점진적 차선책을 찾자.그것은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고치고 정당은

스스로 감량경영하는 것이다

.한국정치에 돈이 드는 것은 우선 정당이 크기 때문이다.

政黨규모 대폭 줄여야

정부가 크다고 정당까지 커가면서 민의는 수렴할 능력이 없는채 돈만 쓰고

있고,선거 때가 되면 부정만 하고 있다.정당의 리스트럭처링은 정부보다

쉽다.정당의 크기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정당이 아닌 국회중심의 정치를 할

때가 됐다.

정치자금법은 그러면 자연 고쳐진다.국고보조금과 지정기탁제같은 것을

다시 생각해야지 당비와 연동시키는 매칭 펀드같은 규정을 만들면 기업에 또

돈을 구걸하게 된다.상당수 정치인들은 지금껏 한보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의 돈도 받았을 것이다.선거법을 고치는 것은 그 다음 순서다.늘 되풀이했지만 한마디로 유인물 만들고,사람 모으며,돈쓰는 대신 앉아서 전파매체를 활용하며,공영선거를 하자는 것이다.

오는 12월 대선 때 일부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같이 하면서 시험삼아 큰

개혁의 뜻이 담긴 새 법대로 한번 해보자.한국정치가 다시 태어나려면 이

길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김광웅〈서울대교수.정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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