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문·방송 겸영 금지는 언론 통제하려고 만든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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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신문·방송 간의 관계가 완전히 없어지게 된 것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대형 미디어의 출현을 막고 언론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정책으로 생겨난 후유증이었어요.”

와세다(早稻田)대 대학원 정치학연구과의 세가와 시로(瀨川至郞·사진) 저널리즘 담당 교수는 2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신문·방송 겸영 규제 배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일찌감치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돼 있는 일본의 학계·언론계에선 한국의 신·방 겸영 금지를 특수 상황으로 보고 있다. 일본 언론계·학계 인사 5명의 의견을 들어 보니, 이들은 모두 “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로 인해 생겨난 정책”이라며 “신문·방송 겸영이 금지되면 언론의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가와 교수는 “융합 시대에 겸영이 금지된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취재력이 있는 신문이 방송이나 인터넷에 정보를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체 간 융합이 왜 필요한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언론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한 개의 취재 내용을 다양한 매체가 활용하는 ‘원 소스 멀티 유스’시대가 되면서 종이 매체 뉴스를 방송·인터넷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신문과 방송을 다양한 콘텐트로 연결하는 시대는 세계적인 추세다.”

-일본의 매체 간 겸영 현황은.

“50년대 이후 방송이 등장하자 신문사가 방송의 공익성을 감안해 주도적으로 방송국을 육성했다. 신문과 방송의 관계는 처음부터 밀접하게 시작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대부분 신문사들이 지분 상호보유나 자회사 형태로 방송에 진출해 있다.”

-어떤 형태의 겸영이 바람직한가.

“일본에선 신문이 주도적으로 방송을 겸영하고 있지만 언론 매체로서는 대등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돼 있다. 신문사가 취재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방송의 언론 기능을 지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등한 관계로 원활하게 교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따라서 겸영하더라도 매체 간의 관계는 대등하게 구성돼야 한다.”

-겸영을 추진하면서 주의할 점은.

“일본은 방송이 너무 기업화돼 있어 문제다. 방송은 첨단기술 발전과 경제논리에 따라 작동하지만 너무 상업화하면서 뉴스를 중시하지 않고 있다. 시청률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프로그램의 질이 계속 떨어지면서 언론기관의 역할이 약화됐다. 한국이 앞으로 신·방 겸영을 재개하더라도 교훈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다행히 한국은 방송이 독자적인 언론기능을 해왔기 때문에 겸영 시대로 가더라도 방송의 뉴스 기능을 중시할 가능성이 크다. 민영방송도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도하면, 시청률이 낮더라도 평판이 좋아지고 광고도 많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국민을 위해 올바른 방향을 보여 주고,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돈벌이만 하면 된다.”

-매체 간 겸영의 구체적인 형태는.

“일본에서는 신문사의 언론 활동을 확대하고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업에 제한이 없다. 그러나 겸영의 정도가 지나쳐 매체의 특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느슨한 연계다. 예를 들어 지분 참여 비율을 20% 정도로 허용하는 것이 좋다.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면 대형 미디어 기업만 남고 작은 기업은 소멸해 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역할은.

“인터넷은 신문 등 기존 미디어와 별도 형태로 탄생한 대안 미디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문·방송·인터넷이 모두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탄생 배경과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이들 3개 매체가 융합하면 가장 효율성 높은 새로운 미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 매체 간 융합이 불가피하지만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에서 방송이 정부 규제를 받는 이유는.

“전파는 공공의 유한한 자산을 사용하고 있어 국가 관리가 필요하다. 또 방송은 디지털화 등 국가의 핵심 기술 발전과도 밀접하다. 더구나 방송의 영향력도 커졌다. 반면 신문에는 그런 법률이 없다. 언론 자유를 위해선 어떤 제약도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성은 신문이 가장 높고, 방송이 다음이고, 인터넷은 오히려 개인 미디어 성격을 가지면서 언론을 배제하려는 성향이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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