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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民黨정권 붕괴에 기여한 통화주의자 - 티트마이어 총재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1931년 독일 북서부지역의 작은 마을 메텔렌에서 출생.고교시절 국가대표탁구선수를 지냈다.쾰른대에 진학해 사회적 시장경제의 이론적 대부(代父) 알프렛 뮐러 아르막 교수의 지도로 경제학을 전공.뮐러 아르막 교수는 민주주의체제 아래서 자유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선 사회적인 공정성이 필수적이라는 전제로 사회보장이 많이 가미된 독일식 시장경제를 제창했다.

티트마이어는 뮐러 아르막 교수의 권고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카톨리 사상과 신자유주의의 관계'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사회적 시장경제는 에어하르트에 의해 전후 독일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채택됐다.

티트마이어는 62년 경제부에 들어가 바로 에어하르트의 눈에 들고,이듬해 에어하르트가 총리가 되자 그의 연설문을 쓰는 보좌관이 됐다.70년대 내내 고속승진을 계속했다.82년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사민당 정권의 과다한 공공지출을 비판

하는'람스도르프 보고서'라는 것을 기초(起草)해 사민당 정권의 붕괴와 기민당의 집권에 큰 역할을 하고 재무부로 자리를 옮겨 국제담당 국무장관이 됐다.

그는 60년대 케인스학파인 사민당의 칼 실러 경제장관이 재정팽창으로 수요를 일으켜 당시의 불황을 극복하는데 성공했을때 총수요관리를 통한 불황타개에 의문을 제기한 이래 통화정책의 목표는 인플레이션 억제라는 통화주의자의 입장을 지켜왔다.

그는 콜총리의 직계로 80년대를 보냈다.그가 88년 적군파의 총격을 받은 것도 그의 영향력의 크기를 말해준다.89년 연방은행 이사로 발령받고는 바로 콜총리의 부름을 받아 동.서독 통화 통합을 지휘하는 중책을 맡았고 93년 마침내 연방은행 총재에 취임했다.

99년 1월1일 유럽 단일통화와 유럽 중앙은행이 발족되면 독일 연방은행도 지금같은 형태의 중앙은행의 기능을 끝낸다.티트마이어의 생애가 독일 연방은행과 운명을 같이하게 된 것은'마르크의 수호자'티트마이어에겐 제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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