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빛과그림자>6. 베트남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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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외개방과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도이모이(개방)정책을 선언한지 10년이 지난 베트남의 오늘은 활기찬 거리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공항에서 호치민시내로 통하는 롱화거리를 비롯해 주요 도로는 오토바이 물결과 외제차량으로 언제나 붐빈다.월남전 당시 미군장교 클럽으로 이름날리던 렉스호텔을 끼고 갈라지는 시 번화가 구엔훼거리와 레로이거리는 LG.소니.삼성.켄우드등

외국기업들의 대형 입간판들이 키재기 하듯 도열해 있어 외국기업의 베트남 투자열기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86년 도이모이정책 선언이후 자본주의 경제에 눈을 뜬 베트남은 현재 고속성장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베트남 투자계획부(MPI)에 따르면 91~95년중 베트남의 평균성장률이 8.2%에 달했으며 95,96년에는 10%에 육박하는 성장률

을 기록했다.91년 67%에 달했던 인플레율이 점차 수습돼 최근에는 5%이하로까지 떨어졌다.지난 5년간 베트남 국민의 생활수준도 대폭 향상돼 구매력이 두배가량 늘었다.

베트남 사회경제원'베트남 사회경제지'편집장인 부 투안 안박사도 아시아개발은행(ADB)등이 내놓은 최근의 거시경제지표를 바탕으로 “베트남경제가 올해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는 점에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88년 외국투자법 공포이래 급증(96년 9월말 현재 인가액 기준 2백24억8천4백만달러)하고 있다.이는 투자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 당국이 92년까지 5년간 외국인투자법만 무려 80가지나 고치고 지난해 가을 또다시 손질한 덕분이다.

베트남 정부는“2000년에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90년보다 두배,2020년에는 10배 이상(2천달러)으로 늘릴 계획”이라며“목표달성을 위해 지난해부터 5년간 평균 10%대의 실질성장률 확보에 나섰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 전망 못지않게 베트남 경제가 헤쳐가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다.국립 호치민 경제대학교 총장인 구엔 탄 투엔박사는“전쟁이후 거의 개.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도로.항만등 사회간접자본(SOC)이 열악해 원활한 경제활동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현재 비행기로 두시간이면 족한 호치민에서 하노이까지의 거리가 철도.육로로는 아직도 꼬박 3일이 걸리는 형편이다(도로포장률 10%).

의식구조면에서도 시정돼야 할 문제가 있다.부 투안 안 박사는 “기업들에 경쟁원리를 심어주는 것”을 앞으로의 주요 과제로 꼽는다.오랫동안 몸에 밴 사회주의 경제의 타성(저효율성)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이 좀처럼 향상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셉존 린쭝 공업단지의 린치농 수석부사장은 개혁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요 문제점으로“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있어 국가관리및 제도가 미흡하며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법률과 정책의 일관성도 결여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베트남에는 관료주의가 강해 각종 인.허가를 받는 일이 매우 까다롭다”고 꼬집는다.실제로 외국기업이 베트남에서 합작회사 설립을 신청할 경우 관계부처및 지방정부와의 교섭에 1~2년이란 기간이 필요해 중도에 사업을 보류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부동산가격 폭등도 문제다.호치민시에는 땅값및 건물 임대료(시내 중심가 20평 월 임대료 약 4천달러 수준)가 지나치게 치솟고 있어 외국 기업 주재원들 사이에선“거품이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하노이 무역관 한정현관장은“급속한 성장에 따른 부정부패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한다.지난 1월말 베트남 법원이 4천만달러의 정부재산을 횡령한 최대 뇌물사건 재판에서 국영 무역회사인 타멕스코의 사장등 4명의 경영진에게 사형을 선고한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현지에선 수군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여전히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시장이라는 것이 김봉규 주베트남 대사의 종합적인 평가다.金대사는“값싼 양질의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두루 갖춘 베트남은 인구 7천4백만명의 거대 시장이라는 점에서 투자가치가 무척 높다”고 강조한다.

일본수출입은행이 지난해 자국 제조업체 7백20여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베트남은 향후 유망한 투자대상지로서 중기적(3년간)으로 5위,장기적(향후 10년간)으로 3위에 올랐다. [호치민.하노이=유권하 기자]

<사진설명>

도이모이 정책의 성공으로 베트남경제가 부쩍 활기를 띠는 가운데 하노이시의 한 거리에 오토바이를 탄 인파가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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