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위기서배운다>上. 왜, 어떻게 일어났나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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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상적자가 긴 가뭄처럼 계속됐다.대통령선거를 전후한 정국불안속에 국내저축은 줄고 소비는 늘어 모자라는 저축을 외채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은행의 부실채권이 급증하고 주가가 맥을 못추는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다른 개도국들의 주식시장이 달아오르자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돈 가치가 다시 급락하고 외환보유고도 급감하면서 주변국들의 외환.주식시장도 덩달아 무너지기 시작,마침내 미국과 국제금융기구들이 긴급지원에 나섰다.'국가 부도'는 간신히 막았으나 국민들은 큰 고통을 겪고 국가경제는 외국 입김에 좌우됐다”

94년 말에 시작된 멕시코 외환위기의 줄거리다.

멕시코 사태후 2년 남짓-.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는'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있다.

“경제회복? 0이 1이 되면 증가율이 얼마가 되는가.위기 이후 멕시코의 경제회복은 그와 같다.”

94년에 하루 10대던 버스 생산이 95년에 1~2대로 줄었다가 지난해 5대 수준이 됐다는 버스 생산업체 마사(MASA)의 헤라르도 시우크 사장은 사뭇 냉소적이다.

위기의 해였던 95년,사람의 이동조차 줄어들어 버스까지 팔리지않던 멕시코의 경제난국은 지난해부터'제조업 중심의 수출주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올해 처음으로 연간 1천억달러를 넘어설 멕시코의 수출구조는 우리와 영 다르다.

“국내가격이 국제시세보다 높아 주로 내수시장에서 돈을 벌었는데 95년부턴 내수가 워낙 없어 수출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따라서 수익은 크게 줄었다.우리는 오래전부터 국내에서도 미 달러로만 거래하므로 환차손을 보지는 않는다.” 구리제

품 생산업체 프로둑토스 나코브레의 수출비중은 94년 30%에서 95년 70%까지 올라갔다.역시 달러로만 거래하는 마사도 비록 하루 5대 정도의 생산이지만 그중 40%는 수출이다.

한편 멕시코에 현지 생산기지를 갖고 있는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최근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 5억달러를 더 투자키로했다.

우리보다 먼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멕시코는 자본이동이 완전히 자유롭고 자국.타국 기업의 구분이 전혀 없다.자국을 외국기업의 생산기지,외국자본의 투자처로 완전히 개방해 무역.자본수지의 흑자를 내리려는 나라가 멕시코다

.

따라서 94년말의 페소화 폭락때 외국인들보다 멕시코인들이 먼저 자본을 해외로 들고나갔던 멕시코와 우리의 현재상황은 한참 다르지만 머지않아 한국경제도 멕시코처럼 개방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멕시코사태를 반추(反芻)해봐야 한다

.

개방경제가 잘 굴러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그러나 94년의 멕시코처럼 악재(惡材)들이 복합적으로 겹치면 개방경제는 한순간에 벼랑에 서고 만다.

중남미 경제의 권위자인 세바스찬 에드워즈 UCLA 교수가 지난해 세계은행의 선임연구위원으로 멕시코사태 이후의 라틴아메리카를 분석했던 보고서를 인용해보자.

“멕시코사태는 7가지의 근본적인 교훈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우선 경상수지는 중요한 기본변수다.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는 경상적자는 바람직하지 않다.외채구조도 매우 중요한데 투기적 자본을 통제하면서 장기투자를 유도하고,특히

국내 금융구조를 탄탄히 해야한다.

수출증대의 핵인 생산성 향상은 인적자원과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춰져야 이뤄진다.

환율상승을 인위적으로 누르는 것은 위험하다.공적채무의 장단기별.통화별 구조에도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정부역할의 재정립을 통한'강한 정부'가 필요하지만 이는 경쟁촉진.소비자보호등을 위한 법.제도 정비와 예측가능한 경제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통해 이뤄져야지 국가개입을 불러와서는 안된다.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분배구조가 개선돼야한다.”

이상의 7가지 교훈과 전부 거꾸로 간다면 94년의 멕시코상황이 되며,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현재 한국의 위기관리 처방이 된다.

물론 우리의 경제상황은 위의 기준에서 볼 때 아직'위기'와는 거리가 있지만 다음과 같은 에드워즈 교수의 지적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아직도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계라든가 개혁에의 실망,과거에의 향수가 포퓰리즘.국가주의를 다시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다.그러나 정치인.지식인.대중 모두가 희망을 갖고 긴급히 나서야할 책무가 있었음을 일깨워준 것이 멕시코사태의 진정한 교훈이다.”

<사진설명>

지난 95년1월 멕시코위기 당시 멕시코시티 시민들이 경제위기를 초래한 살리나스 전대통령의 기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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