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재건축과의 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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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은 소외계층을 배려하고 단기적으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수립.시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이고 이론적인 합리성은 뒤로 미뤄진 느낌이다. 즉 경제 원리에 맞지 않더라도 당장 많은 국민의 아픔을 덜어주고,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 있다면 정책의 타당성이 높다는 것이 건설교통부 정책 담당자의 주장이다.

건교부 주장에 따르면 지금은 한가하게 공급 확대나 논의할 만큼 시장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선 주택 가격 상승의 주범인 강남의 재건축 단지를 다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이로 인해 강남의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모자라는 물량의 공급은 차후 신도시 건설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임대주택 건설도 확대해 나가고 있는 만큼 저소득층 주거 안정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주택시장에 대한 처방은 강남 집값 상승이라는 고열을 식히기 위한 일종의 해열제와 같은 단기적 처방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과연 현재와 같은 강력한 처방이 필요할 정도로 시장이 급박한지 의문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부동산시장의 조기경보체제(EWS)에 의하면 가격 상승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며, 재건축 분양가의 상승이 주변 아파트값을 상승시킨다는 데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엄격한 실증 분석이 이루어진 바 없다. 또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은 미래의 자산 가치를 반영한 것이므로 현재 주변 시세와의 직접적 비교는 곤란하다. 물량 공급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교부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수도권은 주택보급률이 100%를 밑돌아 절대량도 부족하지만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질의 주택이 공급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에 대한 수요의 질적 변화는 급격하다. 이에 따라 조망 가치나 커뮤니티 구성이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지역간 주택 가격의 차별화도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도시 외곽에 아무리 많은 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이는 강남의 주택 수요를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변화된 주택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수요가 높은 지역에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통한 공급이 필수적이다.

도시주거환경정비법이나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 등 새로 도입되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그동안 재건축업계는 사업을 조급하게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무리수가 동원됐다. 또 당장 재건축이 타당하지 않은 멀쩡한 아파트에 대해서도 건설업체나 시행사들이 재건축을 부추긴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등 문제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정책의 집행과 단속은 명확한 객관적 기준과 예측가능성에 입각해야 한다. 건교부는 이미 허가된 재건축 단지에 대해서도 분양승인 절차상의 하자와 과다한 분양가 등을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절차상의 하자인지, 적정한 분양가가 얼마인지는 모호한 상태다. 만약 그런 것들을 문제 삼겠다면 구체적인 기준부터 밝혀야 시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주택 가격을 잡기 위해 재건축시장을 동결시키는 것은 문제를 차후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재건축의 분양가를 정책적으로 낮추는 것은 오히려 분양 과열을 일으켜 투기적 이익을 확대할 가능성만 커진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정상적인 재건축이 활성화하도록 법제를 정비하고, 무엇이 적절한 개발이익 환수인지 철저히 검토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같은 규제에 대한 민간 부문의 반응을 세심하게 살펴 장기적인 주택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부 지역 주택 가격의 단기 동향에 대한 정책 당국이나 매스컴의 과민 반응은 오히려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