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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전투조종사, TOP GU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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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이 되면 우리나라 공군은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행사를 갖는다. 보라매 공중사격대회 시상식이 바로 그것으로 각 부분 수상자 중에서도 전투기 사격대회 부문 최우수 조종사를 뜻하는 탑건(TOP GUN)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탑건을 통해 우리 공군의 전반적인 작전능력이나 전투 조종사의 기량을 대략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라매 공중사격대회

올해도 공군 각 비행단 소속 200명 이상의 조종사가 출전해 자웅을 겨루는 2008년 보라매 공중사격대회에서 박문범(29세, 공사50기, 주기종 : KF-16) 대위가 새로운 ‘하늘의 제왕, TOP GUN’으로 탄생했다. 공군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공군 제38전투비행전대 111전투비행대대 소속 박문범 대위는 공중요격 및 공대지 사격 부문에서 2000점 만점에 1609.2점을 기록해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고 한다. 매년 공군 조종사들의 전투기량을 측정하고 최고의 전투 조종사를 선발하는 보라매 공중사격대회는 1960년 공군본부 주관 하에 ‘제1회 공군사격대회’가 개최됐다. 이후 69년부터는 공군작전사령부 주관 ‘작사 승공작전’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현재의 명칭인 ‘보라매 공중사격대회’는 94년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비전투기 사격대회인 항공정찰, 공중투하, 탐색구조, 표적마킹, CAS 유도통제 대회와 전투기 사격대회인 공대지 및 공대공 사격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88년부터 우리 공군이 최우수 전투조종사를 호칭할 때 사용하고 있는 탑건이라는 명칭이 미 해군의 전투기 병기학교(Navy Fighter Weapons School)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30대 이상 성인 남성 혹은 톰 크루즈의 팬이나 영화광이라면 탑건이란 말을 들었을 때 1986년 제작된 토니스콧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탑건’(Top Gun)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사실 탑건을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하면 ‘미국 서부시대 최고의 명사수’ 혹은 ‘최고의 사냥꾼’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언제부터 탑건이 최고의 전투 조종사를 호칭하는 의미로 바뀌게 되었을까? 최고의 전투 조종사를 뜻하는 에이스(Ace)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탑건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 공군과 미 해군은 당시 기준으로 2선급 전투기로 평가 받던 MiG-15와 MiG-17을 보유한 북베트남 공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최신 전투기와 최신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당시 10:1의 격추 비율을 자랑했던 미 공군은 전쟁 초기 2:1이라는 격추 비율을 기록하더니 MiG-21이 등장한 이후에는 오히려 격추 비율이 역전돼 0.85:1이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미 해군의 경우에도 겨우 체면을 세우기는 했지만 1.2:1이란 격추 비율은 치욕 그 자체였다. 간단히 설명하면 미 해군이 적기 1.2대를 격추할 때 아군 전투기도 1대가 격추됐다는 뜻이다. 미 공군의 경우 오히려 적기를 격추하기도 전에 아군 전투기 1대가 격추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문제점을 정밀 분석한 보고서가 작성됐고 다음과 같은 원인이 지적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종사들의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조종사들이 충분한 공중전 훈련, 특히 근거리 접근전 훈련을 받지 못한 채 실전에 투입됐다. 첨단 무기로 주목받던 공대공 미사일이 정작 실전에서는 기대 이하의 성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투 조종사들이 공대공 미사일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사정거리 밖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은 신무기 도입에 따라 전략 및 전술을 변경했지만 북베트남의 공중전은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재래식 전쟁방법으로 전투가 전개돼 미국의 전략이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9년 11월 미 해군이 캘리포니아 ‘미라마’ 해군 항공기지 내에 창설한 새로운 개념의 공중전 교육기관이 바로 ‘탑건’(Top) 혹은 ‘탑건스쿨’(Top Gun School)로 불리는 해군 전투기 병기학교다. 원래 정식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졸업생들에게 수여되던 탑건이란 호칭이 결국 학교의 대외 명칭이 되어 버렸고 이후 같은 제목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영화에도 묘사된 것과 같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통해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은 베테랑 교관들이 가상 적기 역할을 맡은 A-4 스카이호크 공격기를 몰고 철저한 실전위주의 교육을 실시했고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72년 북베트남 상공에서 벌어진 공중전에서 미 해군은 13.5:1이라는 놀라운 격추 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탑건 교육과정 출신 랜디 커닝햄 대위가 베트남전쟁 최초의 에이스가 된 것이다.

이후 실전을 통해 5대 이상(국가에 따라 3대 이상)의 적기를 격추한 전투 조종사는 에이스로, 평상시 훈련을 통해 전투기량이 검증된 최고의 전투 조종사를 탑건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 육군의 경우 매년 최우수 전투 헬기 조종사를 선발해 ‘탑 헬리건’(Tip Helligun)이라 부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공군은 매년 탑건 외에도 최우수 조종사를 선발해 표창하고 있다. 탑건이 보라매 공중사격대회를 통해 선발된 올해 최고의 공중사격 조종사라면 최우수 조종사는 매년 비행훈련·경력·근무 성적·사격기량·체력 등 10개 분야, 24개 항목을 종합 평가해 선발하는 대한민국 공군 최고의 조종사다. 즉 탑건이 공중전투 기량 측정에 의미를 둔다면 최우수 조종사는 조종사로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종합 평가한다는 점이 다르다. 조종사 사기진작을 위해 1979년부터 시작됐으며 전투기뿐만 아니라 수송기, 훈련기, 헬기 등 공군의 모든 조종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탑건과 차이가 있다.

계동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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